하루를 어떤 식으로 구분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그의 질문은 생뚱맞았다. 의미가 와닿지 않는 막연함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덧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하는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매번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지만 한참 뜸을 들인 그의 말이 의미도 없이 내 앞에 툭 던져졌을 때, 테이블을 건너 마땅히 내게 도착했어야 할 그 말이 허공에서 방향을 잃고 슬몃 스러지는 듯 느껴질 때 나는 심연처럼 아득해진다. 그때의 침묵은 다른 어느 순간보다 무겁다. 그 전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주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한 사람인가?' 나의 판단으로는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둔감한 사람에 가깝다.

 

동그란 원 안에 지키지도 못할 하루의 일과들을 시간별로 빼곡히 적어넣었던 어느 해 방학 이후 나는 하루를 어떤 식으로 보낼 것인지 나누어 생각한 적도 없고, 기껏해야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반강제적인 스케줄을 좋다, 싫다의 판단도 없이 책상 위의 쓰레기처럼 쓸어 담기 바빴고, 그것에 맞추어 허둥지둥 움직이다 보면 하루는 아주 짧거나 영원인 양 길게 느껴지곤 했을 뿐이다. 그런 날이면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고 머릿속에는 왈카닥달카닥 덜컹거리는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자신이 지나온 시간에 대해 '어떠하다' 규정할 수 없는 삶은 슬프지 않은가. 그는 다시 물었다. 그의 질문은 그와 나 사이에 놓인 테이블을 곧바로 가로지르지 못한 채, 허공에서 몇 바퀴 맴을 돌다가 이내 스러지는 듯햇다. 나는 고작 '지금 이 순간'을 기준으로 '그때가 좋았었지' 생각하거나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어쩌지?' 걱정할 뿐, 나의 과거와 미래는 항상 절대적인 대상이 되지 못하고 '지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어떤 것으로 남을 뿐이었다.

 

세월호 인양 소식이 속보로 뜨고 있었다. 3년여만에 모습을 드러낸 녹슨 배 한 척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겐 영원처럼 길었을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모여 바닷속 세월호에 붉은 녹으로 남았으리라. 누군가는 하루를 시간별로, 또는 오전과 오후의 구분으로 행복했거나 우울했던 시간으로 기억되는데 같은 공간에 사는 누군가는 3년을 하루처럼 길고 길었던 연옥의 시간으로 기억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뉴스를 보며 눈물을 찔끔 흘렸고 누가 볼세라 얼른 눈물을 훔쳤다. 그날 하늘에는 노란 리본 구름이 떴었다. 잊지 말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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