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대리인단의 일원으로 헌재에서 막말 논란이 일었던 김 모 변호사가 친박집회에서 했던 말을 기억할 줄 압니다. 그가 말하길, "…… 헌재에서 판결을 내리면 무조건 승복하자고, 여러분 우리가 노예입니까. 거짓말하는 것을 인정해주는데도 우리가 승복하란 말입니까. 조선 시대 양반들이나 상놈들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무조건 양반들 말에 따르라고. 우리가 조선 시대입니까."라고 했었죠.

 

그의 말이 문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렇게 노예가 되기 싫다던 그는 지난 14일 탄핵으로 파면을 당한 민간인 박근혜 씨를 찾아가 스스로 그녀의 노예가 되려했다는 점은 같은 인간으로서 그의 생각을 납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박근혜 씨의 삼성동 자택을 방문했다가 사전에 약속이 잡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고 되려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화를 내던 그의 모습은 추하고 빈약해 보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5일 한 인터넷방송에 출연하여 박근혜 씨를 알현(?)했음을 자랑스럽게 말하더군요. 게다가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용비어천가'를 철저히 배웠던 것인지 박근혜 씨를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었습니다. 조선왕조 건국의 정통성과 여섯 임금의 업적이나 덕을 기리는 내용을 담았던 그 용비어천가 말이죠. "우리나라의 여섯 성군이 나시어 하는 일(건국 위업)마다 모두 하늘이 내리신 복이십니다. (이러한 일은) 중국 고대 성군들이 하신 일과 일치합니다."(海東 六龍이〮 ᄂᆞᄅᆞ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ᄒᆞ〮시니)로 시작되는 '용비어천가'는 사실 손발이 오글거리긴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씨에 대한 김 변호사의 찬사에 비하면 그것은 양반이더군요. 그가 말하길, "지난 2월에 뵀던 때보다 훨씬 더 건강하시고 얼굴이 웃는 얼굴이시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시더라. 이분은 역시 어려움을 많이 이겨내신 분이구나. 제가 너무 감명받았다."라며 "조선시대 단종애사 이후에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사신 분인데 어떻게 저 많은 고통을 다 겪고도 저렇게 웃고 의연할 수 있는지, 인간 박근혜가 저한테 너무 깊은 감명을 줬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그는 "'순교자 박근혜'란 타이틀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모습이 마치 잔 다르크란 성인의 이야기까지도 연상이 되는 대단한 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시적인 문체는 아니지만 오글거림에 있어서는 '용비어천가'를 능가하지요? 본의 아니게 구토를 유발한 것 같아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도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21세기의 신(新)용비어천가'하면 그가 생각날 듯합니다. 낮기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요즘, 조금 덥다 싶으면 한번쯤 그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잠시나마 소름이 돋고 서늘한 한기를 느끼실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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