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던 풍경이 어쩐 일인지 달라 보일 때가 있다. 날씨나 계절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크나큰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또는 내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익숙한 공간에서 맛보는 생경한 느낌은 때로는 나의 존재마저 잊게 만든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화도 내고, 적당한 방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며 두 발로 굳건히 섰던 내 삶의 현장이 오늘은 웬일인지 다른 세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를 밀어낸 그곳에는 어느 순간 예전에는 없던 구형의 유리막이 처진 듯 사람들로부터의 어떠한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에 익은 사람들도 여럿 있건만 그들은 나를 보지 못했는지 도무지 알은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배제된 시간을 나는 지금껏 즐겨왔는지도 모른다. 영혼이 떠난 듯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우두커니 있다 보면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괜찮냐 묻곤 한다. 그 순간 나는 원하지 않던 현실로의 강제 송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나를 팍 하고 꺼지게 만드는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촛불이 꺼지듯 훅 하고 불어서 현실에서 나를 잠시 사라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렇게 현실에 관여하지 않은 채 잠시 그들을 그저 묵묵히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아침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에 간단히 몸을 푸는 산 위 능선의 체육공원에도 시나브로 봄 기운이 완연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라 볼에 닿는 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 말이다.
레너드 믈로디노프의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와 최민석의 <베를린 일기>를 읽고 있다. 봄의 나른함을 극복하기 위해 수학이나 과학 서적을 한두 권 읽어야겠다. 정신이 버쩍 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