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풀리고 베란다로 쏟아지는 햇살이 어찌나 좋던지요. 휴일을 맞아 한껏 게으름을 피웠던 나는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무도 깨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죠. 그 바람에 아침운동도 걸렀고 깔깔한 입안을 찬물로 겨우 헹군 후 이른 점심을 겨우 먹었습니다. 거실을 반쯤 점령한 햇볕. 소파에 앉아 꼬박꼬박 졸던 나는 급기야 거실 한켠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필요도 없는 낮잠을 늘어지게 잤던 것입니다. 눈을 뜨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겨울 햇살.
나는 겨울 햇살의 유혹에 이끌려 밖으로 나섰습니다. 자신의 두 발로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가장 원시적인 이동수단인 걷기를 나는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먼 훗날 언젠가 나 또한 제 발로 걸을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오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나는 원없이 맘껏 걷고 싶은 것이죠. 찬 기운이 어지간히 사라진 적당한 바람과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마을 뒷산의 산길을 한 시간 남짓 걸었나 봅니다. 가벼운 산행에서 돌아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산길을 걷는 내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말은 '후안무치(厚顔無恥)'였습니다. 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두터울 후(厚)'에 '얼굴 안(顔)' 그리고 '없을 무(無)'에 '부끄러울 치(恥)로 이루어진 사자성어. 사전에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름'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물론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말이죠.
오늘 나는 '후안무치'에 더하여 '후흑학(厚黑學)'에 대하며 말하고자 합니다. 아시는 분도 물론 있겠지요. 청조 말 이종오(李宗吾)에 의해 지어진 이 책을 나는 몇 년 전 신동준에 의해 번역 출간된 책으로 처음 접하였습니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신동준의 '후흑학'은 꽤나 두껍고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이종오가 말하는 '후흑'은 두꺼운 얼굴(면후·面厚)과 시커먼 속마음(심흑·心黑)의 합성어로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적절히 계략과 술수를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요지입니다. 오늘날 '후흑'은 대체로 뻔뻔함 또는 음흉함으로 해석되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한비자의 제왕학에 이어 중국의 현대판 제왕학으로 추앙받고 있는 '후흑학'은 중국판 마키아벨리즘으로도 불립니다. 권모술수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후흑학'을 단순히 음흉, 뻔뻔함을 위주로 하는 처세술쯤으로 이해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후흑의 궁극적인 목적은 뛰어난 후흑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후흑구국(厚黑救國)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통치학은 어떤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 정부의 통치학은 알 듯합니다. 성형강국 대한민국의 대통령답게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성형을 통하여 면후(面厚:얼굴을 두껍게 함)에 힘써왔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심흑(心黑:시커먼 속마음)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학문이 아니라 몸을 통하여 후흑학을 완성했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필러든, 보톡스든, 혹은 실 리프팅 시술이든 얼굴에 이물질을 투입함으로써 얼굴이 조금씩 두꺼워지는 건 확실하겠지요. 물론 얼굴을 두껍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뻔뻔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통령은 후흑학을 통달하여 이제는 후안무치의 경지에 이른 듯합니다. 한국판 후흑학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종오의 후흑학이 후흑구국(厚黑救國)에 그 목적이 있었던 반면 대통령은 후흑구순실(厚黑救順實)에 목적을 두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