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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뭐라고 -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부모가 부모답게 변해간다는 건 우리는 아이로 인해 끝없이 배우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아이를 위한 모든 걸 준비하고 갖춘, 그와 같은 완벽한 부모는 존재하지 않겠지요. 혹시 있을라나요? 나도 여느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이를 키움에 있어 어리숙하고 미성숙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둥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세월은 무참히도 흘러 아이는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부모의 간섭을 귀찮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노 요코의 <자식이 뭐라고>는 지난 시절의 나와 마냥 의존적이었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입니다. 포동한 볼이 발그레해서 잠이 든 그 시절의 아들을 곁에서 지켜 보며 혹시나 깰까 손등으로 조심조심 아들의 볼을 매만지던 나는 불규칙한 수면 시간으로 몸은 비록 힘들었지만 얼마나 행복에 겨워 했던 것일까요. 아이가 커서 제발 잠이라도 제 시간에 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하루가 마치 일 년인 양 길게만 느껴졌던 그 때가 이만큼 지나고 보니 어찌나 짧고 안타까운 시간이었는지요.
"책 읽어줘."
"벌써 두 권 읽어줬잖니."
"제발, 한 권만 더."
"안 돼, 이제 목소리가 안 나오는걸."
"나오고 있는데."
"책 읽기용 목소리는 이제 안 나와."
"보통 목소리는 나와?"
"응, 보통 목소리는 다른 데 담아뒀거든."
"그럼 옛날이야기용 목소리는?"
"옛날이야기용 목소리는 아까 써버렸어."
"그럼 보통 이야기라면?"
"으음, 그럼 진짜진짜 보통 이야기야.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짧은 이야기란다." (p.29)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장면이 훤하게 그려지지요? 사노 요코도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작가는 아들 히로세 겐의 유치원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의 기억할 만한 모습들을 사진이 아닌 글로 써서 남겨두었습니다. 아들 몰래 틈틈이 기록한 이 육아서는 숨기는 것 없이 솔직 발랄한 사노 요코의 인생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녀만의 아들 관찰기입니다. 아직 미혼이거나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엄마로서의 사노 요코의 마음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겐은 여학생 한 명을 함께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로 질투하기는커녕 다른 남자 아이 두 명과 절친동맹을 맺기도 하고 여학생이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자 겐과 친구는 방학을 이용하여 여학생의 집에 놀러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시하다며 여학생을 다들 포기해버립니다. 중학생이 된 겐은 여전히 절친동맹의 남학생 둘과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아이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습니다. 그 아이는 상주가 되어 앉아 았습니다.
"겐의 엄마는 가끔 장례식에 가면 상주 자리에 앉아 있는 중년의 장남을 볼 때가 있는데, 열세 살짜리 우와야만큼 당당한 장남은 본 기억이 없었다. 겐과 욧짱은 나란히 조심스레 우와야 앞으로 걸어가서 필사적으로 분향했다." (p.79)
절친동맹의 세 아이, 겐과 욧짱 그리고 우와야는 다니는 학교도 서로 다르고, 성격이나 취향도 달랐지만 방학이면 어김없이 어울려 놀고 여자 친구가 있는 겐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몰래 술도 마시면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 갑니다. 완전한 성인이 된 아들을 보며 엄마 사노 요코는 이제 어렸을 적의 아들을 떠올립니다.
"뭐든 마음껏 해보렴. 어린 시절을 충분히 아이답게 보낸다면 그걸로 좋다. 슬픈 일도 기쁜일도 남을 원망하는 일도 짓궂은 일도 실컷 해보기를.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사랑하는 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p.115)
겐은 엄마의 글에 '과장과 허풍이 섞여 있다'고 평합니다. 자신에 대한 글이 사노 요코의 여러 책에 등장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겠지요. 그러나 사노 요코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아들에 의해 출간된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그토록 싫어했던 아들 겐의 후회가 묻어나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생전의 사노 요코를 추억하며 아들이 잘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보내는 히로세 겐의 감사 편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