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소쿠리를 휘돌아 나가는 바람의 기다림처럼 밖은 온통 바람의 서성임뿐입니다. 콘크리트 일색의 회색 도시에 무람없는 바람만 겅중겅중 뛰놀던 그런 하루였던 것입니다. 입춘도 지난 이맘때면 찬 바람이 물색없이 기승을 부리고 봄을 기다리는 우리는 목을 더 길게 늘인 채 날씨만 탓하곤 하지요. 오늘 불었던 바람은 어쩌면 봄의 전령인 양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오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새삼 오늘처럼 가볍고 신선했으니 말이지요.
심술궂은 날씨만큼이나 대한민국의 국정시계 역시 안갯속입니다. 의심할 것도 없이 탄핵은 당연히 인용될 것이라던 처음의 전망에서 이제는 뒤로 한 발 물러서서 '어쩌면 기각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 때문인지 국정농단의 주체세력과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점점 더 힘이 실리는 듯합니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를 어떻게든 지연시키려는 청와대의 행보도 노골화되었고, 자신감에 찬 그들은 오히려 뻔뻔해지려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지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행태입니다.
조류독감이 조금 잠잠해졌나 싶자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려나 봅니다. 이래저래 물가 불안 요인만 늘어나는가 봅니다. 그런데도 권한대행은 대권놀음이나 즐기고 있으니 나라 꼬라지가 참으로 우습게 되어갑니다. 엊그제였나요? 최순실 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조성민 전 더블루K 대표가 최씨를 강도높게 비판했던 게 말이지요. 그는 재판정에서 최씨를 향해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고 모두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못을 시인하고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고 말했다지요. 그 말은 어쩌면 최씨가 아닌 청와대를 향해 던지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도 불고 날이 찹니다. 이렇게 궂은 날씨에 마음마저 스산해지는 걸 보니 으슬으슬 몸살이 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오라는 봄은 아주 먼 곳에서 아직 느린 발걸음도 떼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