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공기가 맑았다. 일 년 중 반 이상의 날을 미세먼지와 함께 살다 보니 오늘처럼 청명한 날이면 내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명절 연휴가 짧았던 탓인지 명절 후유증은 앓지 않았다. 간만에 모인 가족들은 뭔가에 쫓기는 듯 분주했고 그저 얼굴을 뵈주었으니 됐다는 식으로 서둘러 떠나갔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삼형제 중 막내인 나는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명절 때마다 큰형의 집을 찾고는 있지만 진득하니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누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고 어느 집이나 형제들의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속마음은 제각각이다. 각자 떨어져 살다가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다 보니 핏줄의 끌림보다는 오히려 격조했던 세월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만날 때마다 데면데면하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겸연쩍어 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그런 까닭에 궁금했던 각자의 삶에 대해 묻는 경우는 드물다. 대화의 중심에는 늘 검부러기처럼 가벼운 정치 이야기나 나라 경제 등 나로부터 한참이나 멀게만 느껴졌던 주제들이 등장하곤 한다.
지난 설에도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탄핵정국의 대통령에 대한 일치된 성토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투표권이 주어진 후 단 한 번도 야당을 찍은 적 없는 큰형과 서울의 모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하는 장조카의 격렬한 논쟁도 올해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통 대화라곤 없었던 큰형과 장조카는 정상적인 부자관계로 되돌아간 듯했다. 큰형은 오히려 평소의 정치적 신념이 강경 좌파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대통령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지난 대선에서 지지를 보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배신감을 그런 식으로라도 해소하려는 듯. 서로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사라졌으니 가족간 유대 차원에서 대통령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명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