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어찌나 심하던지 하루 종일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선명하게 보이던 인근 산들도 희뿌연 미세먼지에 싸여 도무지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같이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제5도살장>을 쓴 커트 보네거트의 말이 생각나곤 한다.

 

"우리는 '중독 사실을 부인하는 중증의 화석연료 중독자'가 되었고, '지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비트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끌어모으기 위해 미국 정부와 더러운 기업들은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유머와 독설로도 유명했던 그는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그가 생전에 했던 말은 이따금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곱씹어 생각하도록 한다.

"우리 대통령이 기독교였던가? 아돌프 히틀러도 기독교였다."와 같은 말들.

 

오늘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던 인물은 단연 조의연 판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특검이 청구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분노에 가까운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달리 일부 언론에서는 조 판사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기도 했다. 보기 드문 원칙주의자라고 말이다.

 

그가 원칙주의자라는 건 맞는 말이다. 지난해 9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영장을 기각했으며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중심에 있는 존 리 옥시 대표, 배출가스 조작에 연루된 폴크스바겐 박동훈 전 사장의 영장도 기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기업의 대표나 임원급, 소위 돈 많고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햇었다. 기각 사유도 대부분 대동소이했다. "현재까지 수사 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도 차지 않는다.

 

커트 보네거트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중독 사실을 부인하는 중증의 권력 중독자'가 되었고, 대한민국은 그로 인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비트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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