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자세한 설명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땅 속으로 꺼져들 듯한 한낮의 우울감이나 혹한의 찬바람 속에서 흘렸던 식은땀, 또는 많은 인파 속에서의 뒤꼭지가 서늘했던 공포 등.

 

지난 토요일,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가지 못했다. 팽팽하던 끈이,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진 것처럼 나는 바람 빠진 풍선으로 널부러졌다. 모든 게 무의미한 듯 느껴졌고 마지막 입김이 한숨처럼 내 몸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무관과 무기력의 바윗돌이 사정없이 가슴을 내리누르는 듯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음', 꽝꽝 대못을 친 방에 갇혀 수인이 된 기분.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전화도, 문자도,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러고 있다. 삶이란 결국 무거웠던 주제를 가볍게 만드는 것.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면 지금 심각했던 고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니. 시간은 풍화되고 먼 쪽에서부터 긴 그림자에 덮여 어두워지면 우리의 고민도 그와 같이 사그라들고 퇴색하여 먼지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모임에서 보지 못했던 친구들 중 몇몇은 어쩌면 1년 후에나 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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