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날씨 변덕도 심하고 일도 힘에 겨웠던지 화상을 입은 듯 윗입술에 물집 몇 개가 생겼다. 둔한 듯 보여도 사람의 몸뚱어리는 어떤 정밀한 기계보다도 훨씬 더 민감하다. 적당히 쉬면 풀리겠지, 생각했는데 누적된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살기 위해선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필요로 한다.

 

겨울볕이 화창하다. 구름도 없는 그저 푸른 하늘이 시린 들녘으로 쏟아진다. 세월의 칼날 위에 맨발로 선 사람들에겐 한낱 사치일 수밖에 없는 그런 날씨. 가까운 공원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울려퍼진다. 햇볕을 향해 돌아 앉은 노인 몇 분의 등 굽은 그림자가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혼란한 시국 탓인지 유난히 조용한 올해의 세모 풍경.

 

이따금 순한 바람이 불었다. 뚜껑이 열린 과거에 변명을 하듯 하루를 더하는 일은 그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그렇게 또 한 해를 훌쩍 살아낸다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가벼운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슬픔이 주는 기쁨>을 읽고 있다. 그의 글은 마른 먼지를 털어내듯 명료하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의 작가는 언제 그 많은 지식을 축적한 것인지... 나는 가끔 그의 지식을 부러워한다.

 

제 마음의 안뜰에 누군들 걱정 하나 없으랴마는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생각 밖으로 꺼내들 때마다 휑한 바람이 스쳐가곤 한다. 누더기가 될 때까지 그 생각들을 매만지다 보면 길에서 스치는 사람들조차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짠한 연민이 가슴을 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겨울볕이 너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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