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쌀쌀했던 날씨는 다소 누그러져 포근했다. 끄물끄물 어두웠던 하늘은 오후가 되자 희끄무레 개었고 변덕스런 바람이 종일 불었다. 바람에 낙엽이 지고 있다. 가을바람에 몸을 맡긴 낙엽이 보도 위를 뒹군다. 시간은 정지된 화면을 쉴 새 없이 덧칠하며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의 수고로는 어림도 없을 일들을 시간은 척척 해내는 것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풍경 속에 예전에 읽었던 시가 한 수 떠오른다.

 

물끄러미

           -나태주

 

흰 구름이 자꾸만

키를 높여가는

하늘 아래

 

염소 한 마리 고삐 매여

풀을 뜯고 있는

풀밭 위에

 

살그머니 다가가

몸을 눕혀본다

마음도 눕혀본다

 

나는 흰 구름을 바라보는데

염소는 풀을 뜯다 말고

나를 바라본다

 

물끄러미

서로.

 

홀로 외로웠거나 한동안 어둠 속에서 울분을 삭였을 사람들은 오늘 광화문광장으로 모인다고 했다. 누구에게는 하릴없는 넋두리일 수도 있는 그 외침은 그저 핑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외로웠던거다. 힘 있는 자들의 오만과 독선을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더운 입김을 시린 가슴에 더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쯤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로의 시선 위에 적선하듯 자신의 온기를 나누고 있을 터였다.

 

꼼꼼히 살피지 못한 잘못은 있었지만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그래서 자신도 피해자인 양 발표햇던 대국민 담화문은 그저 대국민 사기극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용기 있는 정치인이라면 어떤 불리한 조건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비겁하고 부끄러운 정치인의 모습을 2016년의 가을에 보고 있는 셈이다. 가을이 가고 곧 겨울이 오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시련의 계절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추위를 서로에게 향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이겨내야 한다. 물끄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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