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이유도 없이 새벽에 한 번 잠이 깨는 바람에 오늘 아침에는 5시 30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밖은 여전히 캄캄했고 습관적으로 운동복을 꿰어 입은 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추스르며 현관을 나섰다. 새벽 기온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파트를 벗어날 무렵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낭패였다. 우산을 가지러 다시 돌아가자니 귀찮고 우산도 없이 그냥 가자니 빗발이 거세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비좀 맞으면 뭐 어때'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산을 올랐다. 귀차니즘이 결국 나를 압도한 것이다.

 

산을 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빗발이 굵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푸른 나뭇잎들이 직접적으로 비를 맞는 건 막아주었다는 점이다. 능선에 있는 체육공원에 들러 몸을 풀었다. 정자 밑에서 체조를 하고 팔굽혀펴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철봉은 이미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잠시 있었다. 피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산길을 걸었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웠던 탓에 발을 헛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휘청 하면서 중심을 잃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주'지는 않았다. 'Sunsiri' 아줌마 정도의 영적 능력이라면 비라도 그치게 했을 텐데 말이다. '더 블루 K'라는 회사를 만들고 사업이 번성하기를 간절히 원했더니 전 우주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청와대와 문체부는 나서주지 않았던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영적 능력이 턱없이 낮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리 간절히 원했건만 산을 다 내려올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명 위기 국면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있지만 권위는 무너졌다. 임기라고 해야 1년 남짓 남은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마저 상실했다면 그것은 이미 대한민국 내에서 최고권력자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명예로운 퇴진은 아니지만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라도 직을 내려 놓는 게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대통령에 대한 충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퇴진을 건의하는 게 맞다고 본다. 적어도 자신들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대통령을 끝까지 남아 있도록 한다는 건 비겁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위기 국면을 타개하고 장기적인 아노미 상태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이리라.

 

정부와 여당은 지금의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하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 몇몇을 처벌함으로써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 양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권력을 상실한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할 인물도 없으려니와 권력이 살아 있을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그간의 비리들이 봇물처럼 터질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힘 없는 대통령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날 테니 말이다. 그런 비리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증폭되고 국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갈 것이다. 결국에는 쫓겨나듯 등 떠밀려 직을 내려 놓는 것보다는 지금 스스로 물러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이제 비는 그쳤다.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의 실상처럼 여전히 하늘은 어둡고 찬바람이 불 때마다 으스스한 한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다들 무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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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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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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