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이란과의 러시아 월드컵 축구 예선 경기를 무리해서 본 탓인지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습니다. '1:0'이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무기력한 경기력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기에 경기가 끝난 후에도 아쉬움과 실망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자야지' 생각하면 할수록 눈만 말똥말똥하고 의식은 더욱 더 또렷해지는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를 여러번 반복한 후에 어찌어찌 잠이 들었는데 새벽 5시 30분에 맞춰놓은 알람이 여지없이 잠을 깨웠으니 제대로 잠들었던 시간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듯합니다.
아침 운동을 나갈까 말까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수십 번도 더 갈등했나 봅니다. 어쩌면 수백 번이었는지도 모르죠. 운동복을 입고 현관을 나서기까지 어찌나 힘이 들던지요.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그 시각이면 어둠이 어지간히 흩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캄캄한 어둠에 휩싸이곤 합니다. 저는 오히려 어둠에 싸인 숲의 적막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으스스한 바람이라도 불어올라치면 섬뜩한 느낌이 없지는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다행히 바람도 없고 무척이나 조용했습니다. 능선을 다 올랐을 때 나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고라니의 갑작스러운 질주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산짐승의 잠을 방해할까 싶어 평소에도 손전등이나 랜턴을 가져가지 않는 까닭에 어둠이 더해지는 겨울철에는 제 발자국 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산짐승들, 예컨대 고라니나 청설모 또는 길냥이들이 갑작스러운 저의 출현에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혹서와 가뭄 때문에 많지도 않은 도토리를 욕심 많은 사람들이 샅샅이 뒤져 주워가는 바람에 이맘때의 가을산은 몸살을 앓곤 합니다.
저는 요즘 '존 르 카레'(저는 처음 접하는 작가입니다만)가 쓴 <민감한 진실>과 조 팰카,플로라 리히트만이 쓴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를 읽고 있습니다.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제가 먼저 이렇게 고백하는 이유는 제 자랑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분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이따금 관음증 환자처럼 다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해지곤 합니다. 저만 그런가요?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