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을 갖는다는 건 좋든 싫든 자신의 의견과 대치되는 어떤 대상과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은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어렸을 때는 나도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만의 확실한 의견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마치 세상 사람이 다 틀리고 내 생각만 옳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더러 했었고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갖는다는 건 생각만큼 행복한 일도 아니요, 힘있는 누군가에 의해 쉽게 굴복되기도 하고, 의견이 다르다는 시답잖은 이유로 가까운 사람들과 결별하기도 하고, 별것도 아닌 자신의 의견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쓰는가 하면,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낸 날 저녁이면 꼭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목까지 차오른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빠져들었던 것도 아마 그런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부분 외아들이고,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많지 않고, 조용한 성격에 음악을 좋아하고, 무리에 잘 섞이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성격의 사람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다만 동경할 뿐이다. 동경이란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한 진한 향수일 테니까. 그런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이 세상과 다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또는 그녀)는 자신만의 의견을 갖지 않는 약한 존재처럼 읽힌다. 소설에 빠져든 독자는 주인공에 대한 동정심으로 어찌할 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자 연민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맑았던 하늘은 부쩍 어두워졌다. 20대 국회의 첫번째 국정감사가 한창인 요즘, 국감의 스타로 김제동이 등장한 걸 보면 국회의원들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사는 게 재미없거나. 또는 현 정부가 감추어야 할 게 너무 많거나. 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남해안에는 오늘 또 큰 비가 내린다는데 할 일 없는 사람들은 뭐 재미있는 일 좀 없을까 연일 그 궁리뿐이다. 그들에게 삶은 그저 하나의 놀이이거나 다시 없는 유희로 비칠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수해 복구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오늘 또 얼마나 하늘을 원망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