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온통 잿빛입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계절을 즐기려는 행인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조화를 이루는 오후. 이런 날이면 왠지 그리운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손편지 한 통 쓰고 싶어집니다. 애써 고른 정갈한 편지지에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한 자 한 자의 마음이 흐린 가을 하늘에 어린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을 모두 전해줄 것만 같은 그런 날입니다.
낮에 잠깐 시 외곽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길섶에 흐드러진 쑥부쟁이와 마을로 이어지는 샛길마다 울긋불긋 코스모스며, 이따금 보이는 나팔꽃. 사람도 없이 한적한 버스정류장 한켠에는 하늘색 공중전화 박스가 덩그러니 외롭고 하늘 저편으로 꿀벌이 날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꽤나 오래인 듯한 공중전화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 보았습니다. '웅' 하고 울리는 발신음. 기억도 희미한 일곱 자리 전화번호를 누르면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이 아주 먼 과거의 목소리 그대로 '뚜-뚜' 간절하게 울리는 내 그리움의 송신음에 반갑게 화답해줄 것만 같았습니다.
하늘이 어두울수록 그리운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걸 보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했던 서정주 님의 시가 제게는 어울리지 않았나 봅니다. 이성복 시인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는 '세월에 대하여'라는 시가 있습니다. 다 옮길 수는 없고 제가 좋아하는 부분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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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월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곱게곱게 자라왔고 몇 개의 돌부리 같은
事件들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 어려운 修業時代, 욕정과 영웅심과
부끄러움도 쉽게 風化했다 잊어버릴 것도 없는데
세월은 안개처럼, 醉氣처럼 올라온다
웬 들 판 이 이 렇 게 넓 어 지 고
얼마나빨간작은꽃들이지평선끝까지아물거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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