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스트 레터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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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느냐 물었지요? 누구에게나 그렇듯 일상이란 언제나 번잡스럽고 잡다하지만 막상 말로써 설명하려 들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지는 게 일상이지요.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몇몇 일들을 제외하면 딱히 말할 것도 없지요. 아니, 그것은 제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제 일상의 면면을 당신에게 만큼은 어떻게든 특별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게 저의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제 욕심일 뿐이고 어쩌면 당신은 특별할 것 없는 저의 소소한 일상을 궁금해 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9월입니다. 길었던 올 여름 폭염을 감안하면 9월은 그야말로 축복의 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저는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읽는 책들은 어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체계도 없고 이렇다 할 목표도 없는 그런 독서일 뿐입니다. 일상의 권태와 무료함을 달래줄 유일한 소일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때우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의 독서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조조 모예스의 소설 <더 라스트 레터: 사랑을 찾아주는 마지막 열쇠>를 오늘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요즘 조조 모예스의 소설을 자주 읽게 됩니다. <미 비포 유>를 읽었던 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만 <원 플러스 원>과 <애프터 유>를 읽었던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랬던 게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인 듯한데 저는 또 조조 모예스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이지요. 일부러 작정하거나 미리 계획했던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번에 저는 평범한 이야기를 가지고도 순간적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가로서의 조조 모예스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면서 이 책을 읽었던 듯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니퍼 스털링이 그저 부자 남편을 둔 응석받이 여자로 느껴졌다. 그러나 앤서니는 다른 것들도 보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약간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으며, 자신의 위치가 요구하는 것보다더 영리한 여자라는 점, 한두 해가 지나면 그런 조합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 지금은 오직 그런 사실을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슬픈 기미만 눈에 감돌 뿐이었다. 제니퍼 스털링은 끝없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사교적 일상에 갇혀 있었다." (p.62)

 

어쩌면 당신은 위에서 제가 인용한 문구만으로도 소설의 전체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부자 남편을 둔 덕분에 세상 물정이라곤 눈꼽만큼도 알지 못하는 유한마담 제니퍼와 앤서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신문기자이자 이혼남이었던 앤서니는 제니퍼의 남편, 로런스 스털링이 자신의 집에서 개최한 파티에 초대되어 제니퍼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권위적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로런스는 제니퍼에게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 부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세상 물정이라곤 모르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제니퍼는 성공한 사업가인 로런스를 남편으로 둠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을 은근히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까닭에 무시하는 듯한 남편의 태도도 그럭저럭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앤서니와 제니퍼는 서로에게 빠른 속도로 빠져듭니다. 로런스도 그런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죠. 한편 로런스의 비서였던 모이라는 언제나 격식을 갖춰 행동하는 로런스의 태도에 흠모와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제니퍼에 대한 질투의 마음도. 어찌 생각하면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은 앤서니는 제니퍼의 동행을 강하게 바라고 그녀에게 요구합니다. 약속시간이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제니퍼를 뒤로 하고 앤서니는 결국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그 시각에 제니퍼는 앤서니를 만나기 위해 서두르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모든 기억을 잃는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제니퍼는 모이라 같은 여자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하지만 모이라 파커에게는 한 가지 이점이 있었다. 늘 모든 것이 주어지는 제니퍼 스털링 같은 여자와 달리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하룻밤의 짧은 기억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p.224)

 

사고에 대해 쉬쉬하는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서 제니퍼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주변의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니퍼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날 무렵 로런스는 그녀에게 그날의 교통사고로 앤서니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제니퍼는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1960년 9월에 있었던 사고와 기억을 잃은 제니퍼. 세월은 흘러 소설은 1964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미국으로 갔던 앤서니가 돌아오고 제니퍼와의 재회로 이어집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앤서니가 제니퍼 앞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죠. 그러나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앤서니를 잊고 지냈던 4년 동안 제니퍼에게는 딸이 한 명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혹 하나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콩고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앤서니와 딸을 데리고 로런스로부터 달아난 제니퍼의 운명은 엇갈립니다. 그리고 소설은 이제 40년의 세월을 지나 2003년 9월로 이어집니다.

 

역설적이지만 사랑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앤서니와 제니퍼가 다시 재회하던 1964년의 시점에서 소설이 멈췄더라면 그건 아마도 삼류 로맨스 소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운명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지요. 언젠가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도 아마 가을의 어느 날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명은 소설에서도 다 다룰 수 없는 수많은 복선들로 이루어진다고 제게 했던 말 당신도 기억하고 있는지요?

 

소설처럼 9월의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안부를 묻는 당신에게 무엇 하나 특별한 걸 말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하루를 살아내는 각자에게 일상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지는지요. 그러나 특별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상을 설명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매번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저로서도 답답한 노릇이지만 당신의 웃음 속에 저의 모든 사정이 속속들이 이해되고 잇다는 걸 알기에 '그저 잘 지내노라'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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