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고 했던가요? 오늘이 처서이니 내일 아침부터는 모기에 물리지 않고 무사히 아침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는군요. 올해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모기의 개체수도 예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는 뉴스 보도를 여러 번 접하기는 했었지만 제가 직접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산길을 걷다 보면 극성스러운 모기떼의 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저는 막연히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름내 그토록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처서가 지나고 점차 추위가 찾아 오면 나처럼 매일 아침 산을 찾는 나그네들의 혈관을 뚫고 피를 빨아먹을 만한 기력도 점차 잃게 되겠지요. 어찌 모기만 그렇겠습니까. 온 세상의 뭇 생명들이 다 그러하겠지요. 오죽하면 옛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고 했겠습니까.

 

어제 모 방송국의 저녁 뉴스에서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미래의 예상을 보도하더군요. 얘기인 즉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 2040년 이후에는 서울의 열대야가 41일 이상, 2070년 이후엔 72일 이상 이어질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었습니다. 10년마다 8일씩 늘어나는 셈이지요. 지금도 죽겠다고 난리인데 생각만으로도 숨이 컥컥 막혀오지요? 그렇게 되면 일 년의 절반이 여름이 될 거라더군요.

 

저는 이따금 내 머릿속에 골수처럼 박힌 생각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그 중에는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출처도 알 수 없는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꼭 필요한 지식이 한 귀퉁이로 쫓겨난 것도 보게 됩니다. 때로는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일지는 몰라도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인 듯 들립니다. 인간은 힘으로는 사자나 호랑이 등에 미칠 바가 아니고, 그렇다고 계절에 맞추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식물처럼 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빼면 도무지 내세울 게 없는 동물이지요. 어쩌면 인간은 자연 속에서 아주 작디 작은 미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 사람'이라는 오만한 발상으로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욕심에 이르게 된 지금, 자연을 경외하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마트에 나가 보니 폭염으로 채소와 과일값이 껑충 뛰었더군요. 폭염 피해는 수산물도 예외가 아닌 모양입니다. 양식을 하는 전복, 우럭, 넙치 등이 가두리 양식장의 수온이 높아지면서 대부분 폐사했다더군요. 이런 환경에서 인간인들 성할 리 없겠지요.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 밤의 더위는 한결 누그러진 듯하지만 낮의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웃돌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푸념이 오늘도 이어집니다. 우리가 자연을 경외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한 인간은 고통을 통하여 그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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