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더웠던 요 며칠 나는 가급적 외출도 삼가한 채 겨우 숨만 쉬며 살았던 듯합니다. 부식되어가는 세월의 부스러기들이 푸석푸석 손에 만져지는 것만 같은 그런 시간들이었지요. 그런 상태로 한 달쯤 보내고 나면 딱딱하게 굳은 화석이 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하디흔한 암모나이트 화석처럼 말이지요. 안 되겠다 싶어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귀찮더라도 약속을 잡아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를 준 사람이 정신과 병원을 하는 지인 A씨였습니다.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그분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응했습니다. 그분이 정한 약속장소는 대학가 주변에 있는 한 음식점이었는데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한 움직임 탓인지 그곳은 유독 계절에서 잠시 비껴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꼼짝않고 지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일부러 그런 곳으로 불러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청년실업이 큰 걱정이라고 내가 말을 꺼내자 그분 왈, 걱정이 되는 건 청년뿐 아니라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직장을 잘 다니고 있는 사람들조차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혹시 쫓겨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전전긍긍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깜짝깜짝 놀라는 통에 정신과를 내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국민은 개·돼지'라는 식의 엉뚱한 발언만 하지 않으면 정년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리 만만한 게 아닌가 봅니다. 내가 세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게지요.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보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들어갈 때 느꼈던 것처럼 그렇게 생기발랄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단순히 느낌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2,3년 뒤에 있을 그들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와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건강이나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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