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그치지 않고 여전히 내립니다. 비다운 비를 만난 게 얼마만인지요.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까닭에 나는 그저 반가웠습니다. 동심원으로 퍼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에 나는 마치 좋아하는 음악에 홀린 듯 그렇게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박자를 맞추듯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빗줄기와 작은 물웅덩이의 수면에 미끄러지듯 번지는 동심원을 음악을 듣는 듯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날에는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도, 잠시 마음을 사로잡는 책도 굳이 필요치 않을 듯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영국의 EU 탈퇴냐, 잔류냐를 두고 갑론을박 시끄럽습니다. 세계화라는 게 그런 것이지요. 거리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까운 것 하나 없는 먼나라의 문제이지만 마치 우리일처럼 걱정하게 되니 말입니다. 간밤에는 잔류를 예측했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바꿔서 탈퇴쪽으로 기울고 있나 봅니다. 그 바람에 주가는 꼭지가 열린 풍선처럼 허무하게 꺼져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는 게 도박이라구요.

 

어제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이모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이 환경문제와 관련한 한 워크숍에서 "나는 친일파의 후손이다. 천황폐하 만세" 등을 외쳤다고 해서 종일 뜨거웠지요. 나도 KEI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더랬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선조가 친일을 한 덕분에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의 할애비든 애비든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저는 이따금 가난에 찌들어 사는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 어느 한 사람이 꾀죄죄한 차림으로 TV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선조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그게 진심일까? 하는 의심이 들곤 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그렇게 외친 게 잘못이 아니라 친일파의 후손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의 녹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땅히 그는 일본으로 망명을 하거나 일본을 위해서 충성했어야 하지요. 게다가 그런 자를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인사권자의 크나큰 잘못이라고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아마도 그는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을 보면서 마침내 대한민국에서도 친일파의 세상이 도래했구나 생각하여 심적으로 크게 고무되었던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정부 예산이 모두 삭감된 것을 본 그로서는 대한민국 정부도 이제 자신의 편이라고 여겼겠지요.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나는 물동그라미의 파문에 홀린 듯 빠져 있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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