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늘 소설 같은 현실을 꿈꾼다. 그렇게 될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마저 없다면 도무지 살아갈 의욕이 생기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우리는 주말마다 로또 복권을 사고, 행복에 겨워 숨이 꼴딱 넘어갈 듯한 가족만 등장하는 주말 드라마를 본다. 이번 주말이면 나도 또한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액수의 로또 당첨금을 받고 숨이 꼴딱 넘어갈 만큼 행복해 하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메워주는 것 중 8할은 슬픔 또는 연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고운 채에 받쳐 주루룩 흘러내릴 듯한 슬픔만 제거하고 나면 모래에서 사금을 찾듯 행복 알갱이 몇 알쯤 발견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은 순전히 개별적인 것일 뿐, 너와 나를 이어주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 하여, 어떤 관계에서든 그 속에 놓인 잠재된 슬픔을 제거하고 났을 때의 가볍고 맨송맨송한 느낌은 둘 사이의 관계를 길게 이어주지 못한다. 말하자면 관계에 있어서의 연민은 둘 사이를 공고히 하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모는 고생하는 자식들이 안쓰럽고, 자식은 또한 세월에 희석되는 부모가 애잔하다. 아내는 밖에서 고생하는 남편이 불쌍하고, 남편 또한 없는 살림에 동동거리며 식구들 뒤치다꺼리를 하는 아내가 왠지 모르게 짠한 것이다.

 

꿈에서나 그리던 소설 같은 일들이 어느 가을날 감나무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감이 툭 하고 떨어지듯이 당신의 현실에 짠하고 나타난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영혼에 깃든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빨아들이고 당신이 맺고 있던 관계란 관계는 모두 끊어놓을런지도 모른다. 하여, 행복은 가볍고 짧은 것일수록 좋다. 그러나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행복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한 것들은 대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올 뿐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오직 행복의 발원을 생각할 뿐 행복 자체를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는다. 어제 편의점에서 복권을 사던 너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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