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는 온통 꽃길입니다. 봄을 배웅하는 아까시 나무의 꽃잎이 마치 첫눈이 내린 듯 등산로를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가는 봄이 아쉬워 산신령이 뿌려 놓은 아까시 나무의 하얀 꽃잎을 보고 있노라면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노래가 절로 흘러나옵니다. 저는 요즘 꽃향기 가득한 그 꽃길을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자연이 주는 무한정의 베풂이 미안하여 하산길에는 항상 등산객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를 주워 들고 내려옵니다. 어차피 노는 손이니 그거라도 하면 덜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쓰레기를 줍는 제게 '수고한다', '고맙다'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색안경을 끼고 저를 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배에 나도 아롱이 다롱이라는데 생각이 다른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그 사람들의 주장인 즉 그냥 둬도 되는데 까탈스럽게 구는 까닭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잘난 척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자연보호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먼 옛날에는 동네 곳곳에 개똥이며 쓰레기가 넘쳐났었지요. 그 시절에 살았던 어르신들이니 제 행동이 유난스럽게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동네 쓰레기라야 대개는 썩어 거름이 되고 산과 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다였지요. 그러나 요즘은 다르지요. 암요, 다르고 말구요. 썩어 거름이 될 만한 것도 없지만 썩지 않는 게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엊그제 뉴스에 보니 바닷속이 사막처럼 황폐해지는 갯녹음 현상이 우리나라 연안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더군요. 그 면적이 무려 여의도 넓이의 70배에 달한답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오염된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도 문제지만 정화처리도 하지 않은 오수를 바다에 무차별적으로 버리고 있으니 바다인들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지요.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제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저는 그 말이 곧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 세대에도 지금보다 더 나은, 아니 적어도 지금 정도의 자연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자면 지금 우리가 자연을 아끼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연 파괴는 일종의 한 세대를 학살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인자보다도 더 미워하고 분노해야 할 대상은 그런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인자는 고작 한두 사람, 많아야 몇 명을 죽일 뿐이지만 한 세대를 전멸시키지는 못하지요. 그렇다고 제가 살인자를 옹호하자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가습기 살균제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또 어떠했나요. 일시적인 편리를 좇아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거나 무시로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제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여러분이라면 그 말을 믿을 수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