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불던 비바람 때문인지 오늘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맑았다. 여느 날처럼 산을 오르는데 등산로에 흩어진 잔가지와 나뭇잎들이 마치 태풍이 지나간 흔적처럼 어지러웠다. 간혹 아까시 나무의 채 벙글지도 않은 하얀 꽃망울이 줄기에 조롱조롱 매달린 채 떨어져 있었다. 개화가 멀지 않았는지 바람에 실려 오는 진한 꽃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떡갈나무 넓은 잎사귀에 잎맥을 따라 손금처럼 퍼져 있던 송화가루 노란 무늬도 어제의 비에 씻겨 말끔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설령 이런저런 고민이 있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 싶은 게 옮기는 걸음마다 괜한 자신감만 는다. 사는 게 뭐 별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등산로 입구의 계단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일흔 살 안팎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자전거 짐받이에 소소한 농기구를 묶어 싣고는 계단 끝머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등산로 초입의 산자락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분인 듯했다. 넓은 챙이 둥그렇게 달린 모자 아래로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처럼 깊은 주름이 져 있었고, 담배 연기를 한모금 들여 마실 때마다 볼우물이 깊게 패였다. 동이 트기 전의 선선한 아침에 농사일을 끝내기 위해 할머니는 새벽부터 서둘렀을 것이다.

 

기온은 빠르게 오르는데 낮에도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부는 바람이 싫지 않았다. 바람이 한 차례 몰려올 때마다 답답했던 마음이 훌훌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4일간의 제법 긴 연휴가 생겼다. 아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낀 이번 연휴는 어른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롯이 쉰다는 야무진 꿈은 애초에 버려야 할 듯하다. 그렇게 분주히 움직이다 보면 연휴가 끝난 후에는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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