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푸슬푸슬 눈이 내렸다. 숫제 무게가 나가지 않는 듯한 가벼운 눈이었다. 길 건너편의 중학교 운동장에는 하늘색 운동복 차림의 아이들이 칼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나 농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하여 바라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들의 몸짓은 너울거리는 불꽃처럼 환하고 푸르렀다. 그것은 차라리 몸짓이라기보다 뜨거운 열기였다.

 

이맘때의 어른들은 저마다 한두 가지씩의 우울과 고민을 잿빛 이불처럼 덮어 쓰고 저물어가는 한 해의 쓸쓸한 뒷모습을 배웅한다. 1월이 오기 전의 풍경은 왠지 무겁고 어둡다. 예년에 비해 경기가 안 좋다거나 슬픈 일이 유독 많았던 한 해여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오래된 관습이라고 해야 옳으리라. 그러므로 어른들에게 있어 12월은 설사 축하해야 할 가볍고 밝은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시종 어두운 표정으로 짐짓 우울을 가장하는 어두운 달이 되곤 한다. 매년 12월이면 깔깔대고 웃는다거나 팔랑팔랑 가벼운 발걸음은 왠지 어색하게만 보인다.

 

주변의 사람들 표정만 보더라도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다. 마치 내일이면 세상의 종말이 닥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경쟁을 하듯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12월의 그들에게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오직 슬픔과 우울을 나에게 다오 하는 표정으로 작은 걱정과 근심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엿보인다. 1월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사라질 감정이지만 말이다.

 

낮게 가라앉은 하늘과 12월의 우울이 두터운 이불인 양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디. 이럴 때 축하할 일은 가급적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축하는커녕 괜히 분위기도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몰리거나 지금이 그럴 때냐? 하는 식으로 세간의 빈축을 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바보짓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바보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다. 12월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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