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문학 -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
플랜투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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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까지 어둠은 좀체 벗겨지지 않았다. 언제였던가. 오늘처럼 운동을 하고 내려오는데 아파트 단지의 곧게 뻗은 스카이라인 위로 덩그러니 떠 있는 보름달을 보았었다. 아침이 훤히 밝아오는 그 시각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달이 그려내는 둥근 원은 약간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광경이었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가 생각났었고 그래서 더 으스스한 기분에 빠져 들었었다. 바보 같은 짓이지만 혹시 몰라서 다른 하나의 달이 더 뜨지는 않았는지 한참을 찾아보기도 하고 말이다. 오늘 아침에는 그런 달은 보지 못했지만 비에 젖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나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랐는지 고양이는 숲으로 곧장 달아났지만.

 

하루의 시작치고는 꽤나 재미있는 출발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든다는 건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이미 '아는 것'의 범주에 무차별적으로 던져질 준비를 하게 되거나 이따금 새롭다 느껴지는 어떤 것들도 내 시선을 그저 잠깐 사로잡다가 이내 '아는 것'의 범주로 내던져진다. 하루는 무수히 많은 날들 중 하나일 뿐 다름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야말로 개벽을 하듯 '죽음'의 추상성이 현실적인 무엇으로 구체화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토록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1℃ 인문학』을 통하여 네이버 블로그 'Better'를 알게 되었다.'1년 8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국내외를 넘나들며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공유해온, 꿈 많고 순수한 네 명의 청춘'(이승준, 한소라, 여상윤, 김현지)이 깊은 울림을 주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파함으로써 온라인과 SNS를 뜨겁게 달구었었나 보다. 그들 네 명의 젊은이들이 펴낸 이 책 『1℃ 인문학』은 1. 아이디어(IDEA), 2.사랑(LOVE), 3.용기(COURAGE), 4.사람(PEOPLE), 5.사회(SOCIETY)의 다섯 가지 주제를 나누고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10개의 에피소드와 인터뷰를 싣고 있다.

 

그렇게 모인 50개의 에피소드는 대개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귀로 이루어져 있어 하나를 읽는 데 30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 책의 부제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이 말해주는 것처럼 되내어 생각할수록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서울 맹학교'를 졸업하는 여덟 명의 졸업생이 받은 특별한 졸업 앨범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앨범이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학생들의 모습을 스캔하고, 그 이미지를 토대로 졸업앨범이 제작되었다.

 

"추억이란 지나간 시간의 기억으로, 항상 좇을 수밖에 없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억의 감각에 우연히 닿으면 언제 잊었냐는 듯 어느새 그 시간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추억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시간이 많이 흘러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살더라도 지금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감각'을 선물 받았기 때문 아닐까요?" (p.102)

 

소록도의 한센인을 위해 공연을 한 가왕 조용필의 이야기, 유기견들의 마지막 표정을 그림으로 남기는 마크 바론의 이야기, 두 눈을 잃고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며 살고 있는 고양이 허니비 이야기, 삶 자체가 혁명이었던 화가 프리다 칼로 이야기, 이웃을 위해 계산할 돈을 미리 내는 미리내가게 등 우리 이웃, 동시대의 사람들이 사는 지구촌 시민의 특별한 삶을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추위에 얼어붙은 우리의 몸을 녹이는 건 난로도 히터도 아닌 두 손을 맞잡은 순간의 따뜻함이 아닐까요?" (p.408~p409)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삭막하고 각박해지는 세상에 우리의 가슴마저 차갑게 식어버린다면 우리는 어쩌면 삶의 의지마저 꺾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너와 나의 체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99퍼센트의 부정에 맞서 싸우는 1퍼센트의 긍정은 감동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승산이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감동하지 않으면 1퍼센트의 긍정은 다만 1퍼센트의 힘으로 사그라들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혹은 이 책을 쓴 네 명의 젊은이는 서로를 향해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감동하라! 그러면 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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