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보도에는 새로 생긴 물웅덩이와 그 위를 덮은 낙엽들이 이 즈음의 중첩된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컨대 스산한 바람이 부는 오늘과 흐린 가을 하늘에 그려지는 옛추억의 풍경이 번갈아가며 펼쳐지는 것입니다. 비에 젖은 비둘기떼가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갑니다. 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오후에는 비도 그치고 색이 바랜 희미한 해가 무표정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힘없이 주물렀습니다. 의무를 다하려는 듯 말이지요. 어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안톤 루빈슈타인의 '멜로디 F장조'를 들었습니다. 성글게 짜여진 하루의 시간들이 피아노 선율을 따라 가볍게 흔들립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 속의 긴 그리움처럼 가없는 세상으로 나를 데려갈 듯했습니다.

 

계절은 오늘을 축으로 빙글 돌아 겨울 쪽으로 향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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