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비가 조금 내렸다. 색이 변한 나뭇잎이 후두둑 떨어지고 보도에는 이내 가벼운 우울이 서너 겹 깔렸다. 우산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보도 위의 싱거운 우울을 밟고 지나쳐간다. 휴일이 주는 둔탁한 질감 때문인지 사람들은 낮고 어둡고 농도가 짙은 우울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허무맹랑하지만 겉보기에 화사한, 그늘이 없는 기대는 휴일 오전에 그들이 갖는 보편적인 느낌이리라.

 

텔레비전을 틀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좌편향', '올바른' 등 뉴스에는 그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의미도 없이 흩어졌다. 교과서의 소비 주체인 학생들의 의견은 도외시 한 채 자기네들 멋대로 결정하고, 멋대로 뜯어고치면서 그것이 옳다고 믿는 돌대가리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소름이 돋는다. 그들도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이 다할 테고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 시간의 어둠과 우울은 가을 휴일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꺼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오늘자 조간신문을 잘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혹은 텔레비전 아침 뉴스를 잘 이해하거나. 그러나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목적이 따로 있는 듯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대한민국의 과거가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보다 화려했으니 현재에 대한 불만이 더러 있더라도 참고 견디었으면 좋겠다는 뜻일 게다. 즉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다. 어디서 많이 듣던 문장이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문장도 아마 그것일 게다. "가만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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