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김새별 지음 / 청림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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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텐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죽은 자를 찾아 애도하며 전국을 떠도는 주인공 시즈토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린 소설이지요. 내게는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이따금 무심결에 떠오르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지요. 이 소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삶과 죽음의 완벽한 분리'에 있다는 데에 이르게 됩니다. 생각의 지나친 비약인지도 모르지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전국의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삶과 죽음은 항상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생명의 탄생도 늘 우리 곁에 있었지요. 자신이 태어나고 살던 집에서 죽음도 함께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른 나이부터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로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가족 구성원의 배웅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떠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지요.

 

그러나 현대적인 병원이 생기면서 삶과 죽음은 철저히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낯설고 불편한 공간일 수밖에 없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게 얼마나 큰 불행인지요. 그러나 김새별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어보면 병원에서 맞는 죽음마저도 행복인 양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독사가 의미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고독사는 그가 얼마나 고독하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고독하게 살았는가를 말해준다. 병 때문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든, 그 쓸쓸한 삶이 고독사를 불러오고 그 자리에는 비워진 술병, 높다랗게 쌓인 쓰레기, 텅 빈 냉장고, 먼지 앉은 바닥, 때로는 명품 의류와 번쩍거리는 보석들이 증거로 남는다. 삶의 의지를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들이 죽은 것은 아마도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p.158)

 

'유품정리사'라는 생소한 직업의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들을 이 책에 짤막짤막한 글들로 옮겨 놓았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의 글이 특별히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까닭은 실화가 주는 무게감도 있으려니와 목격되지 않는 숱한 죽음에 얽힌 기막힌 사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 죽음 하나하나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개별적인 것이었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는 이유가 있ㅇㅆ습니다. 삶과 죽음이 분리된 이 시대에 그것은 곧 닥칠 훗날 내 죽음의 모습일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스크랩된 다른 블로거의 글이 내 블로그에서 마치 내 글인 양 읽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만난 외로운 죽음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이나 이웃의 단절, 유품에서 나온 자녀들의 사진.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도움이나 위로보다는 그저 따뜻한 안부 인사 한마디였을 뿐인지도 모른다." (p.233)

 

죽음이 흔한 세상에 함구하며 외면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볼 일입니다. 나와 너를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인생에서 단 하루의 삶만 허락된 사람도 철저하게 죽음을 외면하는 세상,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징조나 기미만 보여도 삶과 죽음을 구분짓기 위해 미리 문을 걸어 잠그고 이쪽 편의 삶을 지키려 애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죽음은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내 어렸을 적에 보았던 것처럼 죽음은 항상 삶에 깃들어 있음을 명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죽음을 영영 회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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