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라서 하는 말이지만 추억은 만드는 게 아니라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분재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그렇듯 자신이
선택한 식물을 잘 가꾸고 다듬어 좋은 분재로 만드는 것처럼 추억도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 경험으로는 그게 맞는 것 같다. 아무리
하찮은 경험도 시시때때로 떠올려 생각해 보면 '그래, 그때는 참 좋았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심지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도 시간이라는 필터에 걸러지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지...
요즘 들어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나는 그닥 살가운 손자는 아니었다. 할머니의 꼿꼿한 성격 탓에 우리는 서먹하고 데면데면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손주들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깊었던지... 힘들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손자들을 얼마나 대견해했던지...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꾸중을 들었던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곤 한다. 많은 식구에 먹을 거라곤 옥수수와 고구마가 전부였던 시골의 작은
집에서 겨울은 추위보다도 허기 때문에 나기 힘든 계절이었다. 해가 짦은 겨울이면 우리는 초저녁에 이른 저녁을 먹은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러나 새벽이 되면 배가 고파 잠에서 깨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우리는 부뚜막에 올려 놓은 삶은 고구마를 몰래 꺼내 먹곤 하였다. 잠귀가
밝았던 할머니는 그때마다 우리를 심하게 야단치셨고 우리는 그게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빈 속에 찬 고구마를 먹고 혹여라도 탈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리 하셨을 텐데 그때는 정말 할머니가 야속하고 미웠었다.
찜통더위라는 말이 어울리는 요즘이다.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 때문에 늦은 밤 잠에서 깨면 나도 모르게 문득 할머니 생각을 하곤 한다. 모가
나고 아팠던 추억도 되풀이하여 떠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리운 추억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럴 때 나는 추억은 만드는 게 아니라 가꾸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