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오르는 산의 일정 구간은 요즘 터파기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멀쩡한 산 하나를 통째로 까뭉개서 아파트를 지으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처럼 매일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등산을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그런 까닭에 건설사 측에서는 등산객들이 공사 현장을 무시로 질러 다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끈으로 펜스를 치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나무와 풀을 베어낸 우회 등산로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이 우회 등산로라는 게 현장 밖으로 빙 에둘러 돌다 보니 거리도 멀고, 가파른 비탈길도 생기는 바람에 등산객들로부터는 영 환영을 받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노끈 펜스를 뚫고 현장을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을 내기 시작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다니기에는 거칠고 위험한 길이지만 중장년의 사람들은 그럭저럭 다닐 만했고 단연 지름길을 선호했다. 건설사 측에서도이런 사실을 알고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경비원도 배치하고 펜스도 보강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펜스에 더불어 우회하라는 팻말도 곳곳에 세우고 다쳐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경고성 문구도 곳곳에 붙여 놓았지만 새벽에는 상주하는 경비원이 없는 까닭에 사람들은 여전히 지름길로 다녔다.

 

오늘도 아침에 산을 내려오는데 등산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펜스를 뚫고 당당히 걸어오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산을 오를 때는 우회로를 따라 얌전히 돌아갔었는데 내려올 때는 과감히 펜스를 뚫고 질러오던 처지였던지라 그 아주머니를 비껴갈 때는  나도 모르게 괜히 웃음이 터졌다. 알지 못하는 아주머니와 공범으로서의 동지애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죄 아닌 죄를 지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주택 보급률이 100을 넘은 지는 오래되었다. 이미 집이 남아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끝없이 집을 짓는다. 숲을 없애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채우는 걸 보면 사람 몸에 암세포가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출생률 최하위의 국가에서 그렇게 많은 집을 지어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지금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걸 조금이나마 지연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암덩어리를 넘겨주는 것과 같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건강한 세포를 파괴하며 끝없이 증식되는 암세포처럼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건강한 국토를 끝없이 잠식하고 있다. 암세포를 키워 돈을 벌겠다는 악랄한 욕심이 우리 국토에 암세포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