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겠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시선을 피하여 어물쩍 자리를 뜨려고 일어설 때 그곳에 있던 누군가가 " 왜요, 가시게요?" 묻기라도 하는 날이면 무르춤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엉거주춤 자리에 다시 앉았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싶다. 대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책이 위인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겪는 일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제는 다음주에 입대를 하는 한 젊은 친구의 송별회 자리에 참석했었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의 군입대 송별회는 친구들끼리 학사주점과 같은 어둡고 퀴퀴한 장소에 모여 코가 삐뚤어 질 때까지 마시고는 집에 갈 사람은 적당히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 그 중 제일 만만한 친구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뒷풀이를 하곤 했었다. 집 근처의 슈퍼에서 사온 맥주로 가볍게 입가심을 하자는 게 친구집으로 자리를 옮긴 주된 이유지만 다음날이면 집주인도 그게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하나의 변명이었음을 알게 된다. 맥주로 시작된 술판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밤새도록 이어지고 입대를 앞둔 주인공은 인사불성이 되어 밤새 토하다가 입대하는 그날까지 숙취로 고생을 하는 게 다반사였다.

 

요즘은 우리 때처럼 그렇게 한 번에 끝내는 법이 없고 입대 전에 한번쯤 만나야 할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일정을 조율하여 모임의 성격에 맞게 장소를 정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자리에 참석했던 젊은 친구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슬슬 다음날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까 염려되는 바도 있어서 분위기를 깨지 않고 몰래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화장실에 가던 한 친구의 눈에 띄어 그만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간은 늦고, 체력은 방전되고 도무지 끝날 줄 모르는 술자리가 야속하기만 했다.

 

내가 어제 마신 술이라고는 맥주 한 잔과 소주 한 잔이 다인데 나는 오늘 마냥 늘어지는 피곤과 숙취로 하루 종일 고생을 하고 있다. 이 더위에 군대를 가는 사람이나 남아서 고생을 하는 사람이나 불쌍하기는 매일반인 듯하다. 하늘도 땅도 다들 더위를 먹었는지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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