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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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별점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나는 사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어찌나 궁금했던지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서평을 쓸 생각은 도통 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어떤 식으로 서평을 쓸까, 어떤 구절을 인용할까 궁리하기보다는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서평 대부분을 훑어 보았나 봅니다. 클릭을 해대느라 어깨가 다 아플 지경으로 말이지요. 사실 서평의 내용보다 내가 더 궁금해 했던 것은 별점이었습니다. 다들 3개 내지는 4개의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더군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의 예감이 적중했던 것에 대한 묘한 흥분이 컴퓨터 모니터 위에 한동안 떠돌았거든요. 다른 책들과는 달리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잡동사니>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서평에 드러난 본심과 별점에 주어지는 형식적인 점수가 서로 별개의 것인 양 사뭇 달랐기에 독자 개개인의 본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평을 꼼꼼히 읽어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 이 소설 <잡동사니>의 문체 또한 맑고 투명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다른 작가가 같은 스토리의 소설을 썼더라면 아마도 삼류 로맨스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소설의 내용만 보자면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관점에 따라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현실에서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격정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독자들의 서평을 쭈욱 읽어본 바로는 정말 그렇게 읽으셨던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은퇴를 선언한 임모 드라마 작가의 작품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막장 드라마'로 통칭되는 그이 작품에 대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본방사수'를 고집하던 시청자가 의외로 많았으니까요. <잡동사니>도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읽어냈던 듯합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하게 그려내고 있는지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욕을 하면서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차마 책을 덮을 수도 없었나 봅니다.

 

책의 내용이 얼마나 외설적이기에 내가 이런 말을 할까 궁금해 하실 분들이 혹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윤리적 정서로 본다면 '일탈적 사랑'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말입니다. 예컨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미우미는 열다섯 살의 소녀입니다. 그럼에도 미우미는 중년의 남성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습니다. 돈을 원해서도 아니었고, 강압에 의한 추행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순전히 미우미 본인의 의사였지요.

 

나는 이 책에서 스토리 전개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배경 설명에 주의해서 읽었습니다. 제목의 '잡동사니'는 사람이 아닌, 물건을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10대 소녀인 미우미와 40대 여성 슈코의 상반된 감성을 번갈아가며 보여줌으로써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남편과 사별하여 혼자 살고 있는 슈코의 어머니 기리코와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미우미의 엄마, 그리고 미우미 아빠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와타루와 그의 엄마 사야카에 대하여 작가는 그들의 성격이나 습관보다는 오히려 배경, 즉 그들이 소유한 물건에 집중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부유한 기리코의 집에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구입했던 고급 가구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고, 남편과 이혼하고 자유롭게 연애를 하는 미우미의 엄마는 사귀는 남자와의 관계가 좋을 때는 집안의 물건을 잘 정리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내팽개치고, 남편과 사별한 사야카는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삽니다. 반면 남편에게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 슈코는 어떤 물건이든 완벽하게 정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것이다' 정의할 수는 없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물에 투영된 열정의 강도'인 듯합니다. 지금은 없는 과거의 사랑만 남은 기리코에게 사랑은 기억 속에서 뒤죽박죽인 것처럼 그녀가 소유한 물건 또한 정리되지 않는 어떤 것일 터이고 지금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슈코에게는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 없으며.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린 미우미에게 지금 당장 물건에 대한 소유나 집착은 전혀 필요치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은 퍼펙트해." 엄마는 말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인생이란 게 있을까. 모든 인생은 일종의 완벽이며, 나는 그것을 정사情事로부터 배웠다." (p.10)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 우리가 소유하는 것은 정작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결코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잃게 되는 어느 순간이 오면 우리 손에 남겨진 것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잡동사니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 함께 소유했던 물건들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나이가 어렸을 때의 사랑은 단순한 환상이며 언젠가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미우미가 슈코의 남편을 유혹했던 것은 그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뿐 결코 사랑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테지요.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독차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정사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독차지하고 싶다면, 원치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남편의 여자 친구들이라든지......" (p.27)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만남을 방해하는 일부일처제는 어찌 보면 윤리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잡동사니>를 읽으며 독자들이 간과했던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 스스로에게 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나이와 신분에 걸맞지 않는 두 남녀의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 슈코의 말처럼 너무도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를 배제한 채 윤리적 잣대로만 이 소설을 읽는다면 임모 작가의 막장 드라마와 하나도 다를 게 없겠지요.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애인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그리고 호의와 경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를 받고 만족하지 않는 남성은 없다." (p.160~p.161)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국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하나하나의 사랑은 모두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각각의 사랑은 다른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 개별적이고도 독자적인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그런 듯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삶과 비슷하게 살려고 아무리 노력해본들 완전히 똑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하나하나가 다 다르기에 우리의 삶은 완벽하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결국 삶의 일부분으로서의 사랑도 각각 다 다른 것이기에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일이 떠오르자 어쩐지 무서워진다. 슈코 씨는 냉정하고 온화하며, 아줌마 말투의 사야카 씨와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같은 말을 했다. 두고두고 간직해두는 것. 두 사람에게 그것은 아마도 중요한 일이리라."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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