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발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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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고독 속으로 무작정 들어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줄곧 고독 속에서 머물고자 하는 한 사람을 고독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도 마땅히 없다. 적어도 고독한 본인이 궤적 밖으로 벗어나고자 의도하지 않는 한 말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누군가와 친분이 더해질수록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단지 자신에 대한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도 괜찮다고 인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가 의도한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고독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말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은폐되고 회피된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적인 삶이 자신마저도 회피한 상황에서 우리가 외면적인 관찰을 통하여 획득한 정보가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받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절하게도 고독한 사람 자신이 직접 나서서 진실을 말해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고독이라는 차단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거리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사거나 매력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예의바른 말과 부드러운 미소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가 세상과 화해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동화되어 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가 속하지 않은 삶의 이쪽에서 그를 바라볼 때 우리는 결국 그가 쳐놓은 고독의 울타리, 그 언저리를 겨우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폴 오스터의 산문집 『고독의 발명』은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와 <기억의 서>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30대 초반이었을 때 쓴 이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작가의 아버지, 평생을 회피와 무관심 속에서 고독하게 살았던 한 인간에 대한 회상인 동시에 고독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인 사유를 기록한 책이다.

 

"어린 시절 돈 한 푼 없었고, 그래서 세상의 변덕에 휘둘렸던 아버지로서는 부유해진다는 생각이 탈출한다는 생각과 동의어였다. 아버지는 돈으로 행복을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불행을 없애려고 했을 뿐이었다. 돈은 만병통치약, 한 인간으로서 그의 가장 깊고 가장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돈을 쓰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기를, 그 돈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를 원했다. 그에게 돈은 연금 약액(鍊金藥液)이 아니라 해독제, 정글에 들어갈 때 독사에 물릴 경우에 대비해서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약병이었다." (p.100)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으로 미국 이민 2세대였던 작가의 아버지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작가의 할머니가 부부싸움 도중 할아버지를 총으로 쏘는 바람에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고, 배심원들의 선처와 변호사의 변호 덕분에 무사히 풀려나기는 했지만 여러 명의 자식을 둔 여자의 몸으로 가족구성원 전체를 돌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잦은 이사와 사회의 냉대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대학을 중퇴한 아버지는 그의 형들과 함께 가전제품 수리점으로부터 출발하여 백여 채의 주택을 관리하는 부유한 부동산업자로 성장했지만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는 결국 어머니와 이혼하한 후, 몰락하는 사업과 함께 15년의 길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만 했다.

 

작가의 다른 책 <글쓰기를 말하다>에서 작가 자신이 언급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과 그로 인한 상속 재산이 없었더라면 그는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을 것이다. 물론 작가 자신의 삶도 어쩌면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눈에 비친 작가는 한 가정을 책임질 만큼의 경제적 수입이 되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글을 쓰고 있는, 한없이 무능한 가장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는 단순히 취미생활쯤으로 인식되었다. 어려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작가와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현실로 맞게 되었을 때, 아버지의 장례절차를 책임질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고, 흉가처럼 변한 아버지의 저택을 정리하며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을 함께 갈무리한다.

 

두 번째 <기억의 서>는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에 비해 가독력이 떨어진다. 고독, 기억, 현재, 운명, 아버지, 아들, 글쓰기, 침묵 등에 대해 자유로이 사색한 글을 옮겨 놓은 것으로서 작가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글이기는 하나 독자의 입장에서 어렵고 난해한 글이었다. 어지간한 인내력과 끈기가 없다면 끝까지 읽어내는 것조차 어렵다. 그러나 다 그런 건 아니고 잊을 만하면 중간중간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대목이 등장하곤 했다.

 

"모든 책은 고독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우리가 뽑아내어 내려놓고 펼쳤다 닫을 수 있는 유형적인 물체이며, 거기에 적힌 글들은 설령 여러 해는 아니더라도 여러 달에 걸친 한 인간의 고독을 대변하는 만큼, 우리는 어떤 책에서 읽는 하나하나의 단어에 대해 우리 자신이 그 고독의 입자와 직면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p.239)

 

저쪽 가지에 앉아 있던 우연이 어느 날 갑자기 이쪽 현실로 옮겨와 우리 의식에 전이되어 느리게 떠다닐 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우연의 실체를 어설픈 손길로 매만지며 허둥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 낸 그때의 현실은 이미 과거라는 이름으로 순화되어 우리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지 않던가. 우연을 좋아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산문집이 우연히 내게 들어왔다. 때로는 삶이 소설보다 얼마나 더 믿을 수 없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소설을 쓰는 일은 내 안의 모순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삶은 끝없이 반복되는 모순을 바로잡는 하나의 과정이라고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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