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으면서 웃음을 참는다는 것은 집 앞 건너편의 신설교회가 주민의 화합을 도모코져 주일 예배 시간에 맞춰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다고 뻥을 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최근에 컴백한 MC몽의 '내일 더 힘들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 마음 단단히 먹어'라는 경고를 무시한 채 책을 읽다가 그만 병원에 삼 일쯤 입원할 뻔했다. 병명은 '웃음 방어기제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급발성 호흡곤란 및 복통'.

 

병원에 가는 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나는 참았던 웃음을 시원하게 터트렸고, 내 웃음 소리에 놀란 옆집의 불임 부부는 한밤중의 난데없는 소음에 놀라 잠에서 깨는 바람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며 좋아했고, 어쩌면 일흔을 넘긴 윗집의 노부부도 조만간 늦둥이 소식을 전해오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무렵에 이르러서야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나는 '나의 웃음을 이웃에게 알리지 말라!'고 외칠 뻔했으니까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압력밥솥의 추를 흔들며 새어 나온 김 같은 것이, 뜨겁게, 입술을 빠져나왔다." (p.180)

 

그런가 하면 나는 다음날 닞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키득대고 웃는 바람에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사람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림으로써 대한민국의 노동 생상성을 0.001%쯤 감소시켰으며, '뭐가 그리 우습느냐?'는 짜증 섞인 질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고 얼버무렸으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막 깨닫는 중이라고 덧붙여 말해야만 했다. 게다가 나는 거의 하루 종일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대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과연 이와 같은 나의 노력이 대한민국의 건보재정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생각하며 산술적이고도 논리적인 방식으로 계산하기 위하여 옆에 놓인 계산기를 어찌나 눌러댔던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다.

 

급기야 나는 '너 요즘 아무도 몰래 엑스터시를 하는 거 아니냐'는 엉뚱하고도 해괴모닉한 질문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수능특강 윤리와 사상'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마약 중독자로 내몰릴 뻔했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신종 마약에 취하겠는가.

 

"지구의 모든 것들을 대표해 - 삼미는 최후까지 자신의 질량을 보존해주었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기가 종료된 후 삼미의 선수 전원이 그라운드로 올라왔다. 고별의 안내 방송과 함께 슈퍼스타즈가 연고지의 팬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올렸고, 떡 떡 떡,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팬들은 뜨끈뜨끈한 박수와 환호를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82년 2월 5일 창단에서 85년 6월 21일의 마지막 경기까지 - 3년 6개월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통산 120승 4무 21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흐르는 별 삼미 슈퍼스타즈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p.117)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믈럽 회원이었던 작중 화자와 친구는 짧았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운명처럼 그보다 더 짧은 사춘기를 보냈고, 찝찔한 눈물을 흘리며 각오를 다졌고. 과연 일류대에 합격했다. '빨간 옷에 청바지 입고 산에 갈 생각'을 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아마추어의 실력으로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고군분투했던 팀의 선수들과 함께 했던 작중 화자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 - 거듭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p.199)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사요나라, 갱들이여> 이후 이렇게 실컷 웃어본 적도 없는 듯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웃음 속에서 진한 감동을 느끼는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책이다. 무방비로 똥침을 맞았을 때의 화끈한 충격처럼 우리는 누구나 운명이라는 다부진 엉덩이에 깊숙한 똥침을 날릴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요나라, 갱들이여>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처럼 '다 그렇게 가는 거지.' 우리의 삶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서태지의 '소격동'에서)

 

지나온 삶의 궤적이 타원 방정식의 두 초점처럼 분명하지 않은 어떤 중심을 향해 이끌려지고, 생명을 다한 시간들이 늦가을의 살비늘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또 다른 생명의 세포들이 그 자리를 다시 꿰차는 것처럼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회원은 지금도 어디선가 회원 가입서에 사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팔십 년대의 소년은 이제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IMF의 긴 터널 속에서 이혼을 하고, 프로의 세계가 된 돈벌이에 힘겨워했고, 급기야 실직을 했고, 여러 번 직장을 옮겼고, 아내와 재결합을 했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를 견지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회원들은 그렇게 나이를 먹고, 각자의 위치에서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으며' 산다.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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