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이게 끝나면 저걸 해야지.'생각하다가도 잠시 다른 일을 할라치면 금세 잊어버리고는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멍하니 서 있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때마다 나는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면서도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억력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물론 깜박깜박하는 일은 대체로 그닥 큰일은 아니고 사소하면서도 가벼운 일들인지라 다행이긴 하지만 조금 불편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 나름 열심히 메모도 하지만 그때그때 떠오르는 일들을 다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떤 일을 해야지 떠오를 때마다 미루지 않고 즉시 처리하자는 규칙을 세웠다. 이것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예컨대 '오늘은 손톱을 깎아야지.생각했으면 바로 일어나 손톱깎기부터 찾는 식이다. 예전 같으면 머릿속에 생각만 넣어 둔 채 소파에 누워 뭉그적대거나 멀뚱히 TV 화면을 지켜보면서 마냥 지체했었다. 그래도 잊어먹는 법은 없었다. 물론 그랬으니 마냥 미루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떤 일을 계획했다가 사정이 생겨 지금 당장 처리하지 못할 경우에만 메모를 한다. '사람의 몸이란 게 참으로 오묘하구나!', 하루에도 서너 번쯤 감탄하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흐려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처럼 많이 움직이라는 뜻인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앉거나 눕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억력을 조금쯤 떨어뜨렸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어려서 반짝반짝 빛나는 기억력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흐려지게 마련이다. 조금도 가만 있지를 못하는 어린 시절에는 조금쯤 일을 미루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움직이라는 뜻일 게다. 책을 읽다가도 저자의 이름을 금세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메모를 하지 않은 탓이다. 많이 적고, 많이 움직이는 것은 나이 든 사람의 생존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