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뜨거웠어요.

벌써 가을이라고 불러도 되나 불안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지더군요. 천하장사라도 제 눈꺼풀은 들어올리지 못한다잖아요? 명절 연휴라지만 그저 조용하기만 합니다. 밖에서는 한껏 들뜬 아이들의 초롱한 웃음소리만 들려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 매년 이맘때쯤의 아이들은 다들 시장에 간 엄마를 적당히 기다렸고, 적당히 배고팠고, 적당히 즐거웠고, 더러는 적당히 바빴었어요. 해거름에도 오지 않는 엄마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고, 기나긴 그리움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즈음, 강가에는 은빛 억새의 서걱거림이 흐르는 강물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었죠. 밤이 늦어 돌아온 엄마와 늦도록 취한 아버지의 말다툼에 밤새 잠을 설쳤고, 없는 살림에도 젯상을 차리시는 엄마의 바쁜 손놀림에 부스스 잠이 깨곤 했었습니다. 물안개 걷히는 강가에서 겨우 고양이 세수를 마친 우리는 추석빔으로 받은 양말 한 켤레를 기쁘게 갈아 신고는 젯상 앞에 올망졸망 모여 추석 차례를 지내곤 했었죠.

 

이제 그런 풍경은 다시는 볼 수 없겠지요. 아이들은 제각각 흩어져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카톡을 하거나, 텔레비전 화면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사람의 말소리가 사라진 집 안에 온갖 기계음만 가득합니다. 결핍이 풍요로 변하는 동안 우리가 잃었던 것이 비단 사람의 말소리뿐은 아니겠지요.

 

명절 연휴만 되면 이상하게 잠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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