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볼일이 있어 차를 몰고 외출했을 때의 일이다. 막 은행 주차장에 들어서려는데 때마침 볼일을 마치고 나가려는 차량 한 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차량 두 대가 비껴가기에는 턱없이 좁은 출입구인지라 나는 어쩔 수 없이 후진을 했다. 그렇게 후진을 하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내 뒤를 가로막았다. 택시 기사는 전혀 비켜줄 마음이 없었던지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택시 뒤에 또 다른 차량이 바싹 다가서는 게 아닌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고 만 셈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내 앞의 차량이 후진하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나는 앞 차량의 운전자에게 내가 더 이상 후진을 할 수 없노라는 의사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차량은 전혀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한동안 지루한 대치가 이어졌고 가운데 끼인 나는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더 가관이었던 것은 앞 차의 조수석에 동승한 나이 지긋한 노인의 행동이었다. 인상을 험악하게 하고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서로 문을 닫고 있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보아서는 욕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욱하고 치미는 게 있어 그 자리에 차를 정차시키고 나가 따지려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앞 차의 운전자가 후진을 했다.

 

주차장의 출입구를 지나서야 차량 두 대가 간신히 비껴갈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나는 치밀어오른 분을 삭일 수 없었다. 딴에는 노인을 대접한다는 마음에 주차장 진입을 미루고 정차했을 뿐 아니라 후진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도리어 욕을 먹기까지 하다니... 나는 상대방 노인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육두문자를 날렸다. 물론 듣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 차는 내 옆을 천천히 비껴갔고 나도 무사히(?) 차를 주차시킬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분은 풀리지 않았다.

 

은행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을까 생각했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누군가 내 마음을 제멋대로 조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에 매달린 인형이 조종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추(錘)는 한시도 고요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괜스레 슬프거나, 이유도 없이 들뜨거나, 대상도 없이 분개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기뻐하는 등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 쪽으로 깊이 기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는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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