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어수룩하고 수더분해 보이는 사람이 좋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는 사람이야 깐깐하더라도 일처리가 빠르고 꼼꼼하면 그만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그런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노 땡큐'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단 10분도 같이 있기 어려울 것이다. 숨이 콱콱 막히는 상황을 참아가며 어쩌다 그 시간을 넘긴다면 결국 나는 심폐소생술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구강 대 구강법을 완벽하게 시연할 수 있는 어여쁜 아가씨와 만나는 경우라면 억지로라도 참고 기다릴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성향 탓인지 나는 규칙을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병적인 거부반응을 보이곤 한다. 예컨대 '외출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손을 씻어라' 라든가 '우측통행을 생활화 하라'와 같은 자잘한 규칙에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라'나 '최선을 다하라'와 같은 훈계조의 말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일상을 지배하고 강제하려는 행위는 옳지도 않으며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내가 해보니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고 저러저러한 점이 나쁘더라 그러니 너는 어떤 것을 선택할래?' 하는 식으로 상대방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 소위 어른이나 선생님, 또는 지도자라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만 하고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안 좋은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 충분한 인내력만 길러주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믿는다.
최근에 불거진 윤일병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다. 군대만큼 획일적이고 통일을 강제하는 조직이 없다. 무엇이든 고참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고 그 기준에 따르지 않는 후임병사는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나도 군에서 어금니 하나를 잃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나를 포함하여 내 밑의 후임병사 전원은 새벽 1시에 창고로 집합하라'는 고참의 명령을 내가 거부했다는 것이 내가 맞은 이유였다. 어이없지 않은가! 그런 곳이 군대다. 소위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이 군대라는 말이다. 나는 그때 턱뼈가 부러지지 않고 살아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피해자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어 가해자를 처벌하게 한다면 자력구제를 금지하는 법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정부와 여당이 워낙 잘못한 게 많아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그 부탁은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여당의 원내대표다운 모습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말하고 싶다. 일정한 나이가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는 것처럼 일정한 연령 이상의 노인들도 마땅히 배제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대략 20여 년을 선거권 없이 지내고 있으니 노인들도 100세에서 20년을 뺀 8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게 공평하지 않은가. 나도 마땅히 그 나이가 되면 속세의 모든 이권다툼에서 조용히 물러날 용의가 있다. 그 나이가 되면 지나온 날들을 반추하며 평화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여러 잡설을 늘어놓았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교회의 책임은 선교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자신이 믿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누가 뭐래도 '죄'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