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소곳이 돌아앉는 저녁나절, 베란다 창문을 열자 고샅을 돌고 돌았을 습습한 바람이 와락 품에 안깁니다. 가을을 예감하기에는 한참이나 이른 시점, 입추를 하루 지난 오늘은 이렇다 할 사건도 없이 그저 조용했습니다. 일주일이 그렇게 흘러간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상경하여 병원 응급실의 소란함 속에서 하룻밤을 새고 세수도 못한 얼굴로 빗길을 뚫고 다시 내려오던 월요일 아침 시간은 얼마나 더디게 흘렀던지요.
의식이 돌아온 아버지는 다리가 저리다고 하셨습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장딴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만져졌습니다. 사는 게 별거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온 몸에 죽음의 그림자가 내려 앉은 탓인지 담당 의사마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퇴원은 불가하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야속하던지요. 오래 전부터 치매를 앓아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입니다. 아버지는 적어도 당신의 죽음을 예감할 수 없었기에 마지막 두려움마저 생략한 듯했으니까요. 왜 다들 모였냐고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가볍게 물을 뿐이었습니다.
몇 번인가 마른 핏줄로부터 검사에 쓰일 혈액을 채취하려 애쓰던 응급실 근무자들. 그만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산 자에게는 산 자의 의무가 있으니까요. 혈압을 재는 압박대와 온갖 검사 기구를 주렁주렁 매단 채 찬 에어컨 바람을 쏘이며 밤새 견디셨던 응급실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날은 온 종일 비가 내렸었지요.
일주일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남겨진 시간은 누구도 알 수 없겠지요.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요. 산 자에게는 죽음보다 겨우살이가 더 다급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