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버찌열매는 인도의 보도블럭에 거뭇거뭇 흉한 무늬를 새겨놓았다. 새 생명이 생명으로 화(化)하지 못하는 모습은 처량하다못해 서글펐다. 까만 알갱이들이 이사람 저사람에게 밟히고 뭉그러져 도로를 어지럽히는 꼴이라니... 봄밤을 화사하게 빛내주던 벚꽃의 낭만은 어데가고 이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의 푸념이나 듣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릴 적 달짝지근한 풋내가 나는 오디를 입술이 파래지도록 따먹던 생각이 난다. 허기진 배를 달래주던 오디의 고마움을 어찌 잊을까.

 

나는 흉물스럽게 굴러다니는 버찌 알갱이들을 보며 생각나는 게 있었다. 중학교때였나, 국어시간에 배웠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등장하는 버찌씨다. 그 책에는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어린 소년과 사탕가게 주인인 위그든 씨가 등장한다. 사탕이 먹고 싶어 사탕가게에 들렀던 소년은 돈 대신에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던 버찌씨 여섯 개를 내놓는다. 모자라냐, 묻는 소년에게 위그든 씨는 오히려 사탕과 함께 거스름돈 2센트를 쥐어준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아이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했을 버찌씨를 보며 그 값어치를 소중하게 셈할 줄 알았던 위그든 씨가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했다. 나도 그 어른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으쓱할까. 흔해빠진게 사탕인 풍요로운 시대인데 배고프던 그 시절보다 더 심한 허기가 밀려온다. 한여름의 더위가 턱밑까지 차오른 오늘, 그 더위 속에서 영악해진 내 영혼의 서늘함을 보는 듯했다.

 

소중한 것이 소중한 것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내 아이만 괜찮기를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유난히 사망 사고가 많았던 요즘, 탐욕에 내어준 원칙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적당히 눈감아 주고, 적당히 쥐어주던 검은 뒷거래의 대가가 우리 앞에 크나 큰 재앙으로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 예외가 있을 수 있을까. 버찌 알갱이들이 저토록 처참하게 밟혀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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