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 자신을 방치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삶에 '직무태만'을 작정하는 이 시간이 어쩌면 세월의 잔물결이 짐짓 모르는 체 낙서를 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기억의 백사장에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금세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이런 양가감정 중에 어느 게 우선이라고 말히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아내와 아들놈은 장인, 장모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6박 7일의 짧지 않은 여행입니다. 아내는 로밍을 해도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크루즈 내에서는 전화가 되지 않는다는군요. 한 번도 크루즈를 타본 적 없는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렇답니다. 저는 이제 일주일 동안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침부터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간 기분이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쓸쓸함이 되밀려 왔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기력이 다 식은 배달 음식처럼 날라 왔던 것입니다. 때 이른 더위가 눅지근하게 내려앉는 한낮, 형광등 불빛마저 짜증스럽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 들어 나를 곤혹스럽게 하던 아내의 문자 메시지도 오늘은 잠잠합니다.

 

 

넝쿨 장미가 흐드러진 5월의 끝자락입니다. 약간의 쓸쓸함이 바람에 실려 오가는 듯합니다. 주말부부로 지낸 지 한참 되었건만 마음에 이는 작은 파문을 어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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