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사람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다거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즐거운 경험입니다.  그들은 마치 주제가 없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 시야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소리도 없이 금세 사라져갑니다.  뭐 하는 사람들일까?  사는 게 행복하다고 느낄까?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일까?  부모님은 모두 살아계시겠지?  나와 연관도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별의별 의문과 추측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는 재미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무덥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지면으로부터 층층이 쌓여가는 열기의 층화를 온 몸으로 감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른한 졸음이 오후의 햇살 속에 길게 깔릴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죠.  무언가 분명한 목적을 갖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이쪽 그늘 속에서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구경꾼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 어쩌면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사람들은 목적하는 곳을 향하여 끝없이 오가더군요.  그들과 나 사이에는 마치 투명한 창유리로 가로막힌 듯한 무위의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구명보트에 몸을 누인 채 시간의 하류를 향해 떠내려 가고 있습니다.  의식의 덩어리들이 제각각 흩어졌다가 때로는 커다란 단위로 뭉쳐지기도 하고, 또 다시 분화되는 과정을 몇 번인가 반복하면 결국에는 작은 알갱이들로, 혹은 그보다 작은 먼지로 흩어지는 게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날씨 탓인지 축축 늘어지는 게 육체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괜한 잡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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