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라고 다르진 않습니다. 며칠째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은 채, 마치 물 속에 잠겨 숨만 쉬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며칠 새에 등꽃이 피어, 혹은 지려하고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 양 제 멋대로 피었다 또 제 멋대로 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변덕 심한 봄날씨에도 그저 흘러가는 세월쯤으로 치부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더군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말수가 줄다 못해 아예 입을 닫아버린 사람들, 멀뚱히 TV 화면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대한민국은 지금 슬픔의 어항 속에 갇힌 굼뜬 열대어들로 가득차 있는 듯 보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없는 글이라도 끄적거리지 않으면, 어제 오늘 유난히 따가운 햇살을 더듬지 않으면, 봄꽃 만발한 화단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 어디서부터 우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상실의 고통은 아무리 많이 겪어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지만 언 땅을 뚫고 소생하는 복수초처럼 꺼져가는 생명력에 다시 기운을 북돋울 때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근 일주일만에 잡은 책. 여전히 생각은 부유하는 슬픔의 어항 속에서 까닭도 없이 흔들리지만, '생각불가'라는 딱지를 붙여 봉인하고 살아야겠다고, 이제는 정말 삶을 붙잡고 매달려야 할 때라고 마음을 다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