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파트나 비슷하겠지만 제가 사는 아파트에도 청소를 담당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있습니다.  짧게 자른 파마머리에 세월의 흔적이 얼굴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러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그런 분이죠.  물론 저는 그분의 이름도, 가슴 속에 아로새겨진 눈물의 문신들도, 혹은 즐거웠던 어느 봄날의 추억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언제나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는 까닭에 1층 현관의 계단을 청소하고 있는 그분과 저는 매일 아침 비슷한 장소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할 뿐입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도 비슷한 풍경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데 그분도 잊은 물건이 있었는지 제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할아버지 한 분이 청소 아주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 아주머니도 밝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마친 할아버지가 요즘 어찌 지내느냐 물었나 봅니다.  아주머니는 "머슴살이가 뭐 늘 비슷하지요."하자, 할아버지 왈, "아줌마가 왜 머슴이야?" 하고 되물었습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놓아두었던 빨간 양동이를 집어 들며 아주머니께서는 담담히 대답하기를,

"사는 게 다 머슴살이 아닌가요?" 하였습니다.  저는 다만 그분들의 이야기만 들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 순간 아주머니의 말씀이, 그 한마디 말이 왜 그토록 크게 들렸었는지...  '누구나의 삶도 다만 하나의 머슴살이에 지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물 먹은 종이처럼 차곡차곡 쌓였을 세월의 그림자들이 아주머니의 그 한마디에 다 배어 나오는 듯했습니다.  마음이 금세 축축해졌는지 할아버지도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초록이 싱그러운 봄날이었고,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가슴을 적시는 슬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