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향친구가 나의 숙소를 찾아왔었다.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는 연락도 없이, 그것도 늦은 시각에 세상 다 산 표정을 하고는 나를 찾았던 것이다.  밤 11시쯤 되었을까.  초인종 소리에 놀라 문을 열었더니 친구는 오래 절인 배추처럼 추레한 모습으로 어두운 복도에 그렇게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치킨 한 마리와 맥주 두 병을 들고.

 

 밖에는 바람이 부는지 아파트 뒤편의 소나무가 술에 취한 거인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뿌연 달빛.  친구는 부부싸움을 하고 무작정 나왔는데 그 시각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술을 못 마시는 나에게도 거품이 넘치도록 가득 부어주고는 목이 말랐는지 안주도 없이 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트림인지 한숨인지 깊은 숨을 토해내는 친구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밑도 끝도 없이 내가 부럽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 홀애비 아닌 홀애비 생활을 하는 내가 부럽다니...  맞벌이를 하면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친구.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그와 나는 이따금 전화를 할 뿐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바빴던 것인지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나이임에도 정 떼는 연습부터 미리 하며 살았나 보다.

 

만사태평한 친구와 무엇에든 욕심이 많고 성마른 성격인 그의 아내는 극과 극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잘도 살아왔다.  그렇게 다른 성격이어서 그렇게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체중 때문인지 무릎 관절이 좋지 않은 친구는 운동 좀 하라는 아내의 말에 괜한 성질을 부렸었나 보다.  그렇게 1시간쯤 다투고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옷도 변변히 챙겨 입지 않은 채 집을 나왔다고 했다.  막상 나오고 보니 딱히 갈 데가 없다는 걸 알았고.

 

친구는 자고 가겠다고 했다.  연락도 없이 그래도 되느냐 물었더니 괜찮다며 소파에 풀썩 쓰러졌다.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렇게 친구는 잠이 들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몇 번을 뒤척였다.  어찌어찌 잠이 들었고, 운동을 나가기 위해 잠이 깨었을 때 친구는 더 자라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겠다며 옷을 입었다.  현관을 나서는 친구의 뒷모습이 어두웠다.  마치 누군가의 손에 매달려 공연 시간을 기다리는 줄 달린 인형처럼 처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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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2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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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9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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