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 - 때론 삶이 서툴고 버거운 당신을 위한 110가지 마음 연습
서천석 지음 / 김영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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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고를 때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장르의 책을 읽을 것인가'에서부터 '지금 내가 그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가?' 등 한 번 의문에 빠지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쏟아집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왜 읽는가?'의 대답하기 곤란한 근원적 질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책 한 권 고르려다가 숫제 철학자가 되어야 할 판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이나 시집과 같은 문학작품은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도 쉽게 구매를 결정하곤 합니다.  그렇게 샀던 책 중에는 쓰디 쓴 후회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의외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환호성을 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인문학 서적이나 문학작품은 비교적 나은 축에 속합니다.  문제는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에 있습니다.  생각도 않고 덥석 집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이 책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은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에서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더군요.  '옳다구나.'생각했습니다.  제목도 마음에 들고 단청무늬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겉표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책의 내용은 제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책의 내용이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MBC 라디오 <서천석의 마음연구소>에서 청취자와 나눴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오히려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속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왕 손을 댄 것이니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다른 분은 어떤지 몰라도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주의할 게 있습니다.  책의 내용이 좋다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읽다가는 어느새 책의 마지막 쪽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다 읽었다.', '뿌듯하다.', '좋았다!'하는 느낌은 수도 없이 들겠지만 정작 책의 내용은 변변히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실용서를 읽는 까닭은 실생활에서 써먹자는 데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럴 때면 마치 제가 법정에서 판결문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내용도 모른 채 다 읽었다는 행위로서의 결과만 남았으니까요(이게 뭡니까. 우라질!).  물론 제 경험입니다.  하여, 요즘에는 제가 필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며 읽습니다.  때로는 욕심만 과하여 밑줄을 긋는 부분이 자꾸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밑줄 그은 부분만 재차 읽으면서 지워야 할 부분은 냉정하게 지워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필요치 않지만 앞으로 필요할지도 모르니 미래를 대비하여 기억하는 게 좋겠다구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밑줄을 그을 필요도 없습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면 되니까요.  뇌의 용량이 문제이겠지만 말이죠.

 

이 책의 저자인 서천석 님은 정신과 전문의답게 삶의 난관에 부딪힌 사람들의 여러 고민에 대하여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저질 의지에 대하여,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하여,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면접장에서 긴장을 없애는 방법에 대하여 등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치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꼼꼼히 읽는다고 읽었는데도 생각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가 밑줄을 그었던 부분을 옮겨 적을 차례입니다.  이 책을 읽었던 다른 분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과 공감하기 위해 430쪽에 이르는 책을 통째로 옮겨 적기에는 독수리 타법의 제 능력으로는 무리가 따를 듯합니다.

 

"물론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꼭 용서를 해야만 치유가 가능하냐고.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형참사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빨리 용서한 사람일수록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알고 보면 희생자가 하는 용서란 진짜 용서이긴 어렵습니다.  그저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의 존엄성을 세우려는 몸부림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지 내게 피해를 입힌 상대를 위해서 하는 행위는 절대 아닙니다."    (p.64)

 

"혹시 상대가 뭘 바라고 있다면 그냥 그것을 선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굳이 상대의 정성을 시험하지 마시고 몇 가지 정확히 말해주세요.  그래야 선물 주고받기의 시간이 불안과 실망이 아닌 행복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p.155)

 

"상대의 감정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상대에게 내 감정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내 감정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먼저이다 보니 상대의 감정을 들어줄 여유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상대의 감정을 들어줄 때 내 감정 역시 상대에게 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p.298)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결과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선택을 할 때는 어느 쪽이 내가 더 나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가에 기준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선택한 방향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좋은 선택을 한 겁니다."    (p.331)

 

"똑같아 보이는 습관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실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막연히 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를 자책감에 빠뜨릴 뿐입니다.  그보다는 습관의 출생 비밀을 알아내는 탐구정신이 나쁜 습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것입니다."    (p.334)

 

어떻습니까?  내가 왜 이 책을 실용서에 편입시키려는지 감이 잡히시나요?  제가 밑줄을 그었던 부분은 이보다 한참이나 더 많았습니다.  제가 구식이라 그런지 이렇게 타이핑을 치는 것보다는 손으로 직접 적을 때 기억도 더 잘 되고 좋더군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 옮기기에는 제가 힘에 부치는군요.  기억하세요.  실용서는 법정의 판결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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