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고 번잡한 날은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렇다. 딱히 신경을 곤두 세울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병에 걸려 골골대는 것도 아닌데, 마음은 하루 종일 한곳으로 모이지 않고 철부지 아이들처럼 뿔뿔이 흩어지기만 한다. 애먼 날씨 탓으로 돌리는 것도 참 부질없어 보이고, 길바닥에 떨어진 공처럼 제멋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상념을 뒤좇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다. 어지러워 속이 메슥거린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지만, 오늘처럼 헛된 상념에 단단히 사로잡히는 날엔 사는 게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먹고 친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너무 편해서 그래요."하며 면박을 주는 게 아닌가. '정말 그런가?'하는 의문이 얼마 간의 시간을 집어 먹고, 또 잠시 멍해지다가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읽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는 일 없이 맥쩍게 앉아 있는 것도 못할 짓이다.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댄 탓에 입 안이 텁텁하고, 소태나 먹은 것처럼 쓰다. 이런 날 저녁으로 찬밥덩이를 밀어넣는 것도 처량맞을 듯하여 집에 오는 길에 근처의 마트에 들렀다. 점심도 일찍 먹어 속은 허한데 마땅히 손이 가는 물건이 없다. 빈 카트를 끌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몇 바퀴를 돌았다.
내 집을 무시로 드나들던 아이들도 오늘은 수업이 없다고 안심한 탓인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장본 물건들을 거듬거듬 정리하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괴괴한 어둠만이 남은 하루의 발치를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