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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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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허깨비처럼 느껴질 때, 지나온 길에서 내 흔적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을 때, 삶이 두렵고 막막하기만할 때, 또는 뜬금없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란 마치 일상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힘겹게 걷는 나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내 기억의 인화지에 피사체로 남기는 일일 것이다.  다음 생에서가 아니라 이 생에서, 다른 생을 살아보는 일이 여행이라고 했더 어느 여행작가의 말처럼.

 

옴니버스 형식의 독립영화와 같은 이런 종류의 책에서 깊이와 몰입을 경험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법이다.  열 명의 사람이 시간을 달리 하여 저마다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다니...  각각의 인물이 갖는 명성의 친밀감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  편집이 어설픈 영화를 감상할 때 느끼는 것처럼 화면이 툭툭 잘리는 듯한 단절감을 책을 읽으면서까지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각각의 여행자에게서 느꼈던 오래된 기억을 미끼로 삼아 이 책에 기꺼이 낚이기로 한다.

 

열 명의 여행자는 이랬다.  은희경, 이명세, 이병률, 백영옥, 김훈, 박칼린, 박찬일, 장기하, 신경숙, 이적.  각각의 여행에는 우리에게 <끌림>이라는 작품으로 친숙한 사진작가 이병률이 동행한다.  처음부터 끝으로, 페이지의 순서를 따라 읽을 필요는 없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여행기를 먼저 읽었다.  다음은 김훈.  이것은 순전히 내 취향과 기호에 따른 순서일 뿐이다.

 

1. 여행은 친숙한 나와 낯선 세계가 합해져서 넓어지는 일---신경숙 

뉴욕은 내 여동생이 사는 곳이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났으니 이제 동생은 두 아이와 종일 씨름하는 아줌마가 다 되었을 것이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여행 스케치를 읽으며 여동생을 생각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녀의 글은 생경했다.  그녀가 지금껏 쓴 책은 언제나 책을 꾹하고 누르면 소금기 짙은 눈물이 꿀럭꿀럭 배어나올 것만 같았었다.  그러나 그녀의 짧은 여행기는 스치듯 지나는 풍경을 자를 대고 잘라 놓은 듯 모래알의 서걱거림만 들릴 뿐이었다.  뉴욕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2.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김훈 

남태평양의 넓은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미크로네시아.  그곳에 김훈 작가가 있다.  그의 글에서는 언제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있으나 찾을 수 없다.  언제나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교묘한 말솜씨 때문일까?  대상에 대한 지독한 몰입은 작가의 존재를 언제나 잊게 한다.  작가는 붓을 놓는 순간까지 광기에 쌓인 탐구자이며, 관찰자이고, 몽상가이다.

 

"열대 바다의 저녁은 저무는 해의 잔광이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러서, 색들은 늦도록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별들은 더디게 돋는다.  어둠으로 차단된 수억 년의 시공 저편을 별들은 건너온다.  별은 보이지 않고 빛만이 보이는 것인데, 사람의 말로는 별이 보인다고 한다.  크고 뚜렷한 별 몇 개가 당도하면 무수한 잔별들이 쏟아져나와 하늘을 가득 메운다.  별이 없는 어둠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눈이 어둠에 젖고 그 어둠 속에서 별들은 무수히 돋아난다.별이 가득찬 하늘에서는 내 어린 날의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린다."    (P.170)

 

3.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이병률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낯선 지명이다.  수억 광년의 거리를 가로질러 비로소 찾아낸 어느 작은 별이름처럼.  이병률은 그곳에 있다.

"나는 탈린에서 얻은 여백을 내 위에다 '덮어쓰기'한다.  나는 이 여백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으려 하면서 조금 더 추운 북쪽으로 마음의 방향을 잡는다."    (P.107)

그렇게 찾아간 속은 핀란드의 로바니에미.  여전히 낯선 지명이다.  크리스마스가 한참이나 지난 지금.  내일이라도 당장 산타 모자를 쓴 여행객이 짠하고 내 앞에 나설 것만 같다.

 

4.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은희경

호주를 생각하면 내 대학생활의 전부가 담겨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단지 그곳에서 일 년을 보냈을 뿐인데.  땅이 넓어서인지 추억도 많아진 듯한 느낌은 나만의 착각이다.  은희경 작가는 그곳에 있다.  8월의 와이너리 여행,  겨울의 끝자락에서 싱그런 포도 알갱이들이 달콤한 와인으로 익어갈 것이다.  나는 와인 한 모금을 목구멍 속으로 천천히 흘려 넣으며 짙은 추억에 취한다.

 

"여행이란 멀어지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멀어진 거리만큼 되돌아오는 일에서 나는 탄성( 彈性)을 얻는다.  그 탄성은 날이 갈수록 딱딱해지는 나라는 존재를 조금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함부로 혹은 지속적으로 잡아당겨지더라도 조금쯤은 다시 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P.17 - 18) 

 

5. 여행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박찬일

여행지에서 자신의 오래 전 모습을 떠올릴 때면 조금은 아릿하고 먹먹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그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어쩌면 단단히 감싸였던 외로움이 먼 이국의 땅에서 주책없이 터져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슬며시 외로운, 그러나 때로는 정다운.  박찬일 셰프는 일본에서 도시락 문화를 만났다.  그는 에키벤에서 일본의 작은 우주를 본다.  추억과 함께.

 

6.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돌이표---백영옥

소설가 백영옥에게 홍콩은 한때 왕가위의 도시였고, 한때는 어둠의 도시였단다.  내가 사는 이곳이 아닌, 잠깐 머물렀던 여행지를 '이것이다'하고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은 그곳에서 발품을 많이 팔았다는 증거다.  생각은 자신이 걸었던 거리만큼 굳어지고 물화되면서 어느 순간 마음에 투명한 고드름으로 맺힌다.

 

7.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박칼린

바람에 실려오는 내음과 피부에 닿는 질감 때문에 바다와 산과 사막을 좋아한다는 박칼린.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그녀가 찾은 곳은 섬나라 뉴칼레도니아였다.  이국적인 외모처럼 감정의 표현도 거침없고 이국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언젠가 그녀의 작품『그냥 Just Stories』을 읽었을 때 작품 속에서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눈을 더 크게 뜨고 꼼꼼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제노포비아의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녀에게선 여전히 여행가에게 어울리는 솔직함이 살아있다.  마치 뉴칼레도니아의 햇빛이 그녀의 몸을 유리창처럼 통과하여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8. 그 외의 사람들---이명세, 장기하, 이적 

부끄럽지만 나는 한번이라도 책으로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어쩌면 익숙한 것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에 대해 느끼는 호기심.  이들에게는 그것이 없다.  가수이거나 영화감독이라는 그들의 직업은 알고 있지만 마음 속의 거리감은 그들이 방문했던 여행지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여행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 조금도 닮지 않은 누군가의 생각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행기가 제격이 아닐까 싶다.  여행은 그 사람의 가면을 반쯤 벗겨내는 묘한 힘을 지녔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습이 아니다.  내가 여행기를 읽는 까닭은 내가 가보지 못한 어느 곳에 대한 간접경험을 얻고자 함도 아니요, 그곳에 다녀온 여행가를 부러워하기 때문도 더더욱 아니다.  다만 여행지에서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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