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우리나라 18대 대통령을 뽑는 투표일이었다.

나도 물론 투표에 참여했었다.  그것도 이른 새벽에.  아마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을텐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었다.  투표를 마치고 평상시처럼 산에 올라 가벼운 운동을 하였다.  추운 날의 공기는 폐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데 어제도 그랬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대낮부터 불러 책도 읽히고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도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몹시 궁금한 눈치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자신들이 선택한 대통령은 아닐지라도 이땅에서 자라 이땅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미래는 고스란히 어른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찍었느냐고 끈질기게 물어왔지만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방송사의 개표현황을 지켜보다 늦은 시각에 잠이 들었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서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만 어제만큼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개표결과에 누구는 환호성을 지르고 또 어느 누군가는 분을 삭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도 물론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좀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정치는 나와 아주 멀리 떨어진 딴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며 의식적으로 내 머리속에서 지우려 애쓴 후에야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정치라는 흉측한 애벌레가 내 몸 위로 꿈틀거리며 기어다닐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제의 개표결과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히 디지털 시대에 진입했구나'하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왠고 하니 디지털 시대에 있어 정보의 이미지화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내면의 컨텐츠는 이미지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대선결과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정책이나 비전과 같은 컨텐츠는 사람들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공중파 방송에 의해 형성된 후보자 개개인의 가상의 이미지는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컨텐츠의 부재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요즘 개콘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라우니가 대선 후보로 나온다 해도 이미지화에 성공만 하면 거뜬히 당선되고도 남을 것이라는 추즉도 가능하다.

 

어쩌면 야당의 후보에게 기표했던 사람들은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패배감과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격랑 속으로 빠져든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그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뿐이다.

 

디지털 시대에 있어 허상과 같은 이미지만으로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이 몹시 두렵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앞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겠지만 어쩌겠는가?  시대를 역행하여 컨텐츠를 중시하던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 명백한 사실 앞에서  컨텐츠는 없고 오직 이미지만 남은 작금의 상황이 몹시 우려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도 공중파 방송을 장악하지 못한 세력은 정권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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