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의 기세가 연일 매섭다.
혼자 사는 집에서 난방 온도 올리기도 미안하여 가급적 자제하고는 있지만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동동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면 뜨끈한 바닥에 누워 어깨가 노곤노곤해질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온도조절기 최하단의 '외출'을 고수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마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혹여라도 보일러가 얼어 터질까 염려되어 차마 보일러를 완전히 끄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아침에 운동을 하고 돌아올 때면 등으로 촉촉히 배는 땀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기상청의 한파 경보를 코웃음으로 날려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는 찬물에 샤워를 하는 느낌이 조금 으스스하다. 예전부터 어지간한 추위가 아니고서는 샤워할 때 언제나 찬물을 고집했으니 습관될 만도 한데 나도 나이를 먹는지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요즘은 여기 저기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곧 있을 대통령 선거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그 판세가 정확히 반 반으로 갈리는 듯하여 양쪽 얘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다. 서로 핏대를 세우며 떠드는 폼세가 마치 자신이 대통령 후보라도 되는 양 진지하기 그지없다. 때로는 도가 지나쳐 금세라도 멱살잡이를 할 것처럼 기세등등해지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나와 같은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재밌는 볼거리가 되곤 한다. 예로부터 불구경과 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주로 말없이 듣는 입장이지만 가끔 누가 옳으냐고 물을라치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황희 정승처럼 둘 다 옳다고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 관심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 것이 입증되는 셈이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여당 지지자들의 구성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왠고 하니 지극히 부자이거나 고위 공직에 있는 분들이야 보수 여당을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으나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을 듯 보이는 극빈층의 사람들이 여당을 지지하는 것은 의외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극빈층의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천양지차의 경제적 격차를 보이는 사람들이 한통속으로 여당을 지지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들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모습은 이것은 숫제 설득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과격하다. 생각해 보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논리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말로 설득해도 어려운 일인데 그렇게 과격해서야 어디...
더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야당을 지지하는 진보측 지지자들이 조선 시대의 수구파를 빗대어 '수구 꼴통'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럴 듯한데 여당 지지자들은 하나 같이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부른다. 이게 가당키나 한가?
예전에 내가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이 있었다. 특별한 직업 없이 주식투자만 하며 소일하던 분이었는데 어느날 내게 자신의 속옷을 까뒤집어 보여 주며 자신은 늘 빨간 속옷만 입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분이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그분의 설명인 즉, 자신은 주식 시황판의 빨간색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하는 것이라 했다. 주가가 오르면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것이야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분은 주가가 오르기만을 염원하며 속옷까지 빨간색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그후 우리는 그분을 '빨갱이'리고 부르곤 했다.
보수 여당을 지지하는 분들은 진보 야당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식투자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아는 주변의 야당 지지자들 중 빨간 속옷을 입고 다니며 주가가 오르기를 기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