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부쩍 길어졌다.
새벽 6시에 운동을 나가는 나는
집을 나설 때는 그렇지 않지만,
막상 등산로 입구에 접어들어
매일 오르는 산을
먼 발치에서 바라볼 때면 오싹한 한기를 느끼곤 한다.
캄캄한 어둠에 묻힌 산.
그것은 약간의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 한다.
어렸을 때 품었음직한 귀신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는 사뭇 다른,
내 존재가 어둠 속에서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공포이다.
<생각노트>의 저자 기타노 다케시는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잊히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렇게 쉽게 잊힐 만큼
내 인생이 텅 비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무서웠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에서 너무나 간단히
지워진다는 냉정하고 살벌한 이 사실이
죽음 그 자체로서의 공포를 아주 시시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산을 오르며 미망에 빠지는 것도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엉뚱한 상상에 빠질 때도 있다.
예컨대 미래의 어느 날 있을지 모르는 의학혁명으로
사후세계를 우주여행 하듯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제일 먼저 사라질 것은 종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
그렇게 된다면 불교의 경전도, 기독교의 경전도,
그 외의 다른 경전도 모두 원시시대의 인류가 쓰고 믿었던
동화와 같은 것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